남아프리카에서 가장 사나운 짐승은 무엇일까? 정답은, 사자도 호랑이도 아니다. 의외로 ‘임팔라’이다.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임팔라 앞에 수식이 붙는다. ‘집단에서 이탈한 임팔라’이다.
임팔라라는 동물은 흔히 아프리카의 영양으로 불리는데 사슴처럼 무척 귀엽게 생겼다. 대개 집단적으로 이동하며 생활하는데 생김새처럼 매우 온순한 동물이다. 그런데 그런 임팔라가 집단에서 이탈하여 소외감을 느끼면 날카로운 이빨과 뿔로 사납게 상대를 공격한다. 심지어는 사자나 호랑이도 그런 임팔라를 만나면 못 본 체한다. “저 왕따 임팔라는 피해 가는 게 좋아. 완전히 미친놈이라니까.” 그러면서 슬슬 피하는 것이다.
우리들 학교에도 그런 임팔라들이 더러 있다. 평소 순진하고 착해 보였던 학생이 뜻밖의 문제를 일으켰다면 그 학생은 십중팔구 소외된 임팔라였을 가능성이 많다. 소외감은 인간성을 파괴하며 때로는 돌발적인 울분을 분출시키는 원흉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이라는 사람도 어쩌면 극도의 소외감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교사는, 특히 담임선생님은 내가 맡고 있는 학급에 혹시 숨죽여 울고 있는 임팔라는 없는지 늘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또 전문가로서의 교사는 소외된 임팔라를 단번에 알아보는 감식안을 가져야 한다.
선생님의 학급에는, 왕따 당해 외톨이로 지내며 멍든 마음으로 울분과 공격성의 독버섯을 키우고 있는 한 마리 임팔라는 없는가? 임팔라의 그 으르릉거리는 내면의 소리를 가슴으로 들을 수 있는 선생님은 정말 훌륭한 분이다.
우리들의 교실에는 임팔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길마들도 많다. 길마라는 도구를 아는가? 길마란 짐을 싣기 위해 소의 등에 얹는 안장 같은 것이다. 소 등짝 모양을 따라 시옷자 모양으로 굽어 있다. 곧은 나무를 일부러 굽혀 길마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굽은 나무가 길마로는 제격이다. 굽은 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곧게 자라야 기둥도 되고 서까래도 될 텐데 가운데가 굽었으니 어디 마땅히 쓸 데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당장 우리 선생님들 앞에서 수업을 방해하는 그 녀석들, 눈엣가시 같은 학생을 그 길마 정도로 여기면 어떨까? 휘어지고 굽어져 볼품없지만 그 녀석도 이다음 그 녀석대로 다 쓰일 곳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학생에게서도 남다른 소질과 개성을 발견할 줄 아는 안목, 그런 눈이 우리 교사에게는 있어야 한다. 그런 선생님을 만난 아이는 굽어진 채로도 성장한다.
늘씬한 낙락장송도 품위가 있지만 굽어지고 외틀어진 작은 소나무도 멋스럽다. 문제는 굽어 있다고 너무 꾸짖기만 하면 그 아이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절대 잔소리를 듣고 변화되지 않는다. 굽어진 모양대로 인정해주고 격려해줄 때 성장하는 법이다.
어떤 경상도 사람의 고백이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막가파 학생이었다고 했다. 폭력과 금품갈취가 일과였단다. 어느 봄날 패싸움으로 코뼈가 부러졌는데, 새로 부임하신 담임선생님이 그를 잡고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 이 짜슥아! 니 우짜다가 이리 됐노?”
선생님의 눈물 몇 방울에 그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쓰고 있었다. 오늘 선생님의 학급에서 ‘길마’와 ‘임팔라’를 찾아내서 한번 쓰다듬어 주시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