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가 있듯 책에도 대중(大衆)독자를 거느린 메이저 분야가 있는가 하면 소수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마이너 분야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메이저와 마이너를 가르는 잣대가 야구에서처럼 '질(실력)'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눈 밝은 독자에게 호응을 얻지도 못했고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좋은 책이라는 상찬(賞讚)도 못 들어보고 당연히 판매성적도 시원치 않지만 눈여겨볼 만한 책은 분명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추천한 워스트셀러’에서 찾은 ‘베스트북’과 함께 무더운 여름, 숨겨진 보물을 찾아 떠나보면 어떨까.
비주류적 관심을 담은 책은 관심을 받기 어렵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외)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같은 책이 '개인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디 앨런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쓰레기 같은 세상’(황금가지)을 읽어 보라. 이 책은 수다스러운 유대계 뉴욕인이 풀어낸 시니컬한 유머와 풍자정신으로 가득하다. 사는 게 지루하고 일하기 싫은 당신에게 이 책은 포복절도할 웃음을 선사해 줄 겁니다. 팬터지 소설이야 이제 문학의 주류가 아니냐고 하겠지만 ‘얼음과 불의 노래’(조지 R.R.마틴, 은행나무)는 팬터지 소설의 마이너다. 국내에서 인기 높은 팬터지 소설들이 대체로 무협 팬터지 계열이어서 영국 특유의 느린 진행과 고풍스러운 문체로 진행하며 서사적 스토리텔링과 무게감을 간직한 이 소설은 당연히 일부 마니아들의 몫이다. 올 여름 어디도 가지 않고 꼭 처박혀 책을 읽겠다면 조지프 어메이토의 ‘먼지’(이소)가 딱 맞을 것 같다. 문화사 연구자인 저자는 먼지를 통해 ‘작은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역사’를 더듬는다. 심심풀이로 보기에는 어렵고, 정색하고 보기엔 흥미로운 책이지만 철학·문학·역사를 넘나드는 지적 자극이 충분하다. 남성 독자에게 외면당할 각오를 하고 고른 책이 알리스 슈바르처의 ‘아주 작은 차이’(이프). 독일의 평범한 여성들이 털어놓는 삶과 섹스 이야기에 “바로 내 이야기야”라며 무릎을 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만 보기에는 아깝다. 1970∼80년대를 풍미한 문사철 계열의 책들도 이제는 소수의 독자만 찾는 분야가 되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사라지며 불합리한 사회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수단으로서의 시나 인문서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자본주의적 욕망의 허망함을 드러낸 유하의 ‘천일馬화’(문학과지성사)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가 독자에게 받았던 열광적 지지와 관심을 생각할 때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소리소문 없이 잊혀졌다. 그러나 침묵과 수다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줄 아는, 그래서 말놀이와 삶에 대한 깊은 서정적 침묵을 동시에 만나고 싶은 독자라면 만족할 것이다. 휴가지에서 읽을 한 권의 시집을 꼽아 달라고? 그렇다면 장석남의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작과비평사)이 떠오른다.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집’을 읽으며 경험한 통증을 이 책에서 다시 느낄 수 있다. 소설을 빠뜨릴 수는 없다. 한창훈의 소설집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문학동네)이라든가, 박범신의 ‘외등’(이룸), 한승원의 ‘멍텅구리배’(문이당), 복거일의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문학과지성사) 등 정도를 올 여름 독파해야 할 소설목록에 올려보자. 실용서의 경우는 본격 비평과 소개가 드물어 옥석을 가리기가 더욱 쉽지 않지만 임인학 씨가 직접 쓰고 찍은 ‘한국의 사계여행’(전4권, 창해)은 실용서로 구분하기에 아까울 만큼 돋보인다. 저자가 꼭 10년 동안 전국을 쏘다니며 모은 기록들이기 때문이다. 한 곳을 두세 번, 많게는 대여섯 번씩 들러 그는 놓친 것들을 또 찍고 기록했다. 이 책은 적어도 올 여름 어디로 갈까를 헤매지 않게 해준다. 읽다 보면 어느새 올 가을과 겨울 여행지까지 떠오를 것이다. 지금까지의 목록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구요? 그렇다면 직접 자신만의 숨어 있는 책 목록을 만들어 보십시오.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 나의 안목에 자기만족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