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가 오는 2014년부터(현재 중1)부터 고교 내신성적 산출방식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꾸기로 했다. 고교 내신제도는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이고 고교와 대학 등 교육계의 현안이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편안의 핵심은 현행 석차에 따른 9등급 상대평가 방식을 성취도에 따라 절대평가를 통해 6단계(A~F)로 표시한다는 점이다. 기존 등급제는 과목별 석차가 4%이내에 들 경우 1등급을, 4~11%일 경우에는 2등급을 부여하는 등 비교집단 내의 서열로 성적을 산출했다. 그러나 개편안은 일정한 기준에 도달하면 서열에 관계없이 등급이 부여되도록 했다. 예를 들어 국어 과목의 평균이 90점 이상이면 무조건 수강자수와 함께 A라는 숫자가 표기된다.
교육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점수 부풀리기’가 성행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또한 대학에서도 변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내신의 비중은 더욱 낮출 것이고 일부 대학은 절대평가를 악용해 자율고나 특목고 학생의 선발을 선호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내신 변별력이 약화되면 결국 논술이나 심층면접 등 대학별고사의 비중이 더 높아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결국 입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그만큼 사교육에 의존하려는 경향도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엄존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간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인재 양성은 곧 해당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과제라는 점에서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서 탈피해 창의·인성 수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친구의 불행이 내 행복이 될 수 있는 현재의 상대평가는 바꿔야할 당위성이 충분하다. 연중 계속되는 수행평가와 1년에 4차례 치러지는 지필평가는 학생 간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 실제로 점수 1~2점 차로 등급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친구 간에도 노트를 빌려주지 않거나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를 방해하는 등 교실은 삭막한 전쟁터로 변한지 오래다.
교사와 학생 간에도 상대평가로 인해 끈끈한 정이 실종된 지 오래다. 시험 때만 되면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조그만 꼬투리도 잡히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특히 최근에는 주관식 서술형 평가가 일정 비율 의무화되면서 자의적 해석을 앞세운 학생들이 막무가내로 점수를 달라고 떼를 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다보니 시험이 끝나면 학생과 교사 간에 점수 1~2점을 두고 언성을 높이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다.
문제는 상대평가 하에서도 대학은 여전히 고교 내신을 불신한다는 점이다. 상대평가가 개별 학교 차원에서는 학생 간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될 수 있어도 학교 간의 실력차는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대학들이 대입 전형 요소로 내신을 활용하고 있지만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본점수를 높게 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절대평가 전환은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우선 문제를 쉽게 내는 학교는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절대평가에서는 원점수와 과목평균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새롭게 도입되는 절대평가는 원점수와 과목평균 그리고 표준편차를 병기하도록 했다. 즉 원점수에서 과목평균을 뺀 뒤 표준편차로 나누면 표준화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문제를 쉽게 내면 표준편차와 평균이 높아져 표준화점수가 낮아지기 때문에 점수를 부풀린 사실이 금세 드러난다.
변화하는 시대의 내신제도는 점수 경쟁을 지양하고 학생들의 소질과 잠재력 등을 길러주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든 교육활동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이해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처럼 친구 간, 사제 간에 시험 성적을 두고 극단적인 경쟁으로 나아가는 상황을 방치하고는 교육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교육 당국도 이미 절대평가를 도입하기로 한 만큼 내신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더 많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고 관리 또한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