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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

<책과 세상> 책은 도끼다

아침 밥상에 올라온 콩나물국. 씹을 때마다 줄기가 톡톡 터지면서 입안으로 퍼지는 물기가 싱그럽다. 버스정류장에서 본 은행나무. 나란히 서 있어도 성질 급한 놈은 벌써 노랗게 숨이 넘어가고 느긋한 놈은 아직 초록이 성성하다. 거미줄에 맺힌 이슬의 아름다움에도 눈길이 간다. 무심히 지나쳤던 모든 것에 눈길이 간다.




창의성이 요구되는 광고장이로 살아온 저자의 ‘책은 도끼다’(박광웅‧북하우스)를 읽고 나면 촉수가 예민해진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서 읽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카프카’를 인용해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생각이 에너지다’ 등 인문학적 깊이가 있는 카피로 유명한 광고인다운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꽃 보내고 보니/ 놓고 가신/ 작은 선물/ 향기로운 / 열매(본문 24쪽) 누구나 꽃이 지면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꽃이 두고 간 선물이라는 ‘이철수’의 시선. 저자는 이 판화 그림을 본 후로는 열매를 보게 되면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본문 32쪽) 시보다도 아름다운 이 구절은 최인훈의 ‘광장’에 나온다. 소설을 시처럼 쓰는 최인훈과 사실적 글쓰기를 추구하는 김훈의 문장을 대비하기도 한다. 저자는 “김훈이 미쳤다”고 표현한다. ‘냉이의 맛은 된장국물 속으로 모두 풀어 내놓는 평화가 이뤄지고, 그래도 냉이 건더기를 씹어보면 그 맛이 살아있어 인간에게 기쁨을 주니 셋은 삼각치정관계지만 사이가 좋다’와 같은 기막힌 표현을 미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냉이된장국을 먹을 때마다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되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 가.

저자의 쉬운 설명에 따라 강렬한 감동을 주는 문장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어려운 고전이라고 생각해 들쳐보지 않았던 책들을 읽고 싶다는 욕망과 인생에 대한 성찰이 함께 이뤄진다.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는 스물 네 명의 작가와 마흔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언급한 책을 모두 따지면 예순네 권이다. 이 많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책을 읽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읽고 나면 달라지고, 볼 수 있는 게 많아지며, 인생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라고.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지만 정작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에 걸려 있었다’는 시구처럼 행복은 먼 데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노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톨스토이와 카뮈, 김훈과 조르바의 안내로 생겨났다고 덧붙인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게 아깝다는 게 이런 것일까. 밀레의 그림에서 치유와 감동을 받고 돌아서자, 고흐의 절절한 별빛이 덮쳐온다. 숨 막힐 듯 던져지는 인문학의 향연에 배고픈 감성은 바쁘게 글을 좇지만, 저자는 “천천히 읽어가라”며 성급한 식탐을 꾸짖는다.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가 아닌 잔디 자라는 속도로 살아가라고 가르친다. 이만큼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한 ‘도끼질’이 또 있겠는가. 이 책을 읽어보라. 낙엽 굴러가는 소리가 증기기관차 소리처럼 들릴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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