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던 대구의 한 중학생이 자살한 지 한 달 반 만에 학교폭력 종합대책이 나왔다. 주무부처인 교과부는 물론이고 대통령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대책을 논의하고, 언론 매체들은 연일 학교폭력과 관련된 기사를 쏟아내는 등 마치 곪은 상처가 터지기라도 한 듯 원인과 실태 파악에 나섰고 각 시도교육청은 교육감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골몰했다.
그간의 전례를 보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자실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할 때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정부 차원에서 종합대책을 세운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현행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도 그 결과다. 이 법률은 피해학생과 가해 학생 간의 분쟁조정과 피해학생의 보호 및 가해 학생의 선도 등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에 필요한 사항을 담고 있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에 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단위학교에서는 매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통해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도록 했다.
사회의 책임 강조한 점 긍정적
이렇게 법률을 제정하고 교과부는 물론 단위학교까지 학교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이 크게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그래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책보다는 임기응변식 대증요법으로 대처했기 때문에 병증을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학교 안에서는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가해자를 엄정조치한 후, 동시에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또한 교사 2명이 담임교사를 맡는 복수담임제 도입을 비롯해 폭력집단의 존재를 파악하는 ‘일진지표’를 만들어 대처하겠다고 했다. 폭력학생에 대해서는 학생부에 기록해 대입에 불이익을 주고 학생들이 신체적 요구를 발산할 수 있도록 중학교의 체육수업을 늘리기로 했다. 학교폭력을 은폐하려다 발각되면 교장과 관련 교원은 중징계를 받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학교 밖에서는 학교폭력 신고 전화(117)를 운영해 신고가 들어올 경우 경찰이 즉각 개입하는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지목된 게임을 규제하기 위해 일정 시간 후 자동으로 게임이 종료되는 ‘쿨링오프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일단 이번 학교폭력 근절 대책은 실효성 여부를 떠나 학교폭력이 심각한 범죄라는 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관심을 높여나간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특히 학교의 책임만 강조했던 과거와는 달리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사회의 책임과 노력을 동시에 강조한 점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한다.
교사에게 힘 실어줄 방안 추가해야
다만 학교폭력 근절은 ‘선생님에 힘이 실려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가 아이들을 돌보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잡무를 줄인다거나 생활지도 전문성을 함양하기 위한 연수를 늘리는 것과 같은 구체적 방안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특히 복수담임제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책임과 권한의 한계 때문에 지금도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부담임제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록도 선언적 대책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학교폭력은 학생부 비교과영역에 기록될 수밖에 없는데 각종 입시에서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전형은 사실 입학사정관제밖에 없다. 대입 정원의 10% 남짓한 인원을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제의 비율에 비춰볼 때 실효성에 의문이 간다.
경쟁 위주 교육체제 개선이 급선무 한국교총은 그동안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에게 힘이 실려야 성공할 수 있다고 누차 밝힌 바 있다. 정부가 내놓은 인성교육이나 학생부 기재, 복수담임제, 일진지표 작성, 피해자를 돌보고 가해자를 선도하는 것도 교사의 몫이다. 엄밀히 말해 학급 내에는 다양한 성향의 학생들이 존재한다. 현재와 같은 치열한 점수 경쟁 하에서는 꿈과 사랑이 넘치는 교실은 이상적 구호에 불과할 따름이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동료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정글의 법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강한 처벌은 일정 부분 예방 효과가 있겠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안 된다. 학교폭력의 근본적 원인인 성적 중심의 입시 정책이 학생들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했고 그 결과 인성교육이 무너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경쟁보다는 소통과 화합을 중시하는 방법으로 입시제도가 바뀌고 교사가 학생들을 밀착지도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할 때 모두가 바라는 학교폭력 없는 학교가 현실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