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이 학칙을 만들거나 고칠 때 교육감의 인가를 받는 절차가 없어진다. 국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27일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잇따라 통과시켰다. 지난해 경기도와 광주, 올해 서울 등 진보교육감 지역에서 시행하거나 추진돼온 학생인권조례가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다.
개정안은 ‘학교장은 학칙을 제정 또는 개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현행법에는 ‘학교장은 지도·감독기관(공·사립학교는 교육감)의 인가를 받아 학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돼 있으므로 교육감의 권한이 사라진 셈이다.
법 개정에 앞서 교육과학기술부는 21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두발·복장, 소지품검사, 학내 질서유지를 위한 사항을 학칙에 담을 수 있도록 명시했다. 학교장이 두발·복장 제한처럼 학생인권조례에 위반되는 조항을 학칙에 넣어도 교육감의 인가권이 없어지므로 제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개정안은 ‘학칙에 학내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정할 수 있다’고 밝혀 교육 목적의 간접체벌을 위한 근거도 마련했다. 교과부 학교문화과 오승걸 과장은 “개정된 법안은 조례보다 상위법이므로 학생인권조례에 근거해 교육감이 학칙을 규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개정된 법은 3월 중순 발효될 예정이다. 새로 구성되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4월부터 학칙을 제정 또는 개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주호 장관은 지난 1월25일 KEDI-중앙일보 포럼에서 “1학기에는 구성원 모두가 학칙을 만들고, 2학기엔 학부모 서약서를 받는 등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만들고 지키는 새로운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교총도 바람직한 조치라는 논평을 내놨다. 김동석 대변인은 “진정한 교육 자치는 학교에 권한을 주는 것”이라며 “학교 현실에 맞게 자율적으로 학칙을 정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평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최미숙 대표도 “학생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학교에 자율권을 주는 게 맞다”며 “교육감은 혼란을 조장할 게 아니라 학교가 자율적으로 학칙을 제정·개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과부-교육청 간의 줄다리기는 끝났다. 공은 학교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교과부 오승걸 과장이 “학교가 교육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율적으로 학칙을 정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경기교육청 등 일부 시도에서는 벌써 학칙인가권이 폐지돼도 학교가 조례에 부합되는 학칙을 제정하도록 지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학교가 ‘권한’도 없는 교육감의 명령에 다시 휘둘릴지, 교권을 일으켜 세울 마지막 기회를 잡을 지는, 이제 학교 구성원을 이끌 교장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