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변하려면 어느 나라나 정치인을 잘 뽑아야 한다. 교육이 정치 포퓰리즘에 이용돼 무너지기 시작하면 백년대계가 맥없이 흔들릴 수도 있다.
최근 독일 교육자들 사이에 문제로 자주 거론되는 독일의 수능시험 격인 아비투어(Abitur)의 무력화가 바로 그 단적인 예다. 독일 교육학자인 에버하드 샬호른 박사는 “아비투어는 연방 교육부와 주 교육청의 정책 홍보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며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 한 지 오래된 시대에 뒤진 선발시험”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1788년 프로이센 공화국에서 시작해 오늘에 이른 아비투어는 독일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이다. 아비투어는 200여 년 동안 사회적 약자에게는 신분 상승을 위한 통과의례라는 의미가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기득권의 신분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제도적으로는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지만 서민들은 개천에서 용이 날 정도로 뛰어나지 않는 이상 통과하기 쉽지 않았다. 겉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결국 하층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귀족들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지원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과거 아비투어에 합격하는 계층은 대부분 상류층의 자녀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오랜 시간 독일 사회에서 아비투어 합격증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기준이기도 했다. 이런 아비투어에 대한 서민들의 시각은 당연히 부정적이었다. 서민층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이런 인식을 이용했다. 인기를 얻기 위해 누구나 쉽게 아비투어에 합격할 수 있도록 점점 수준을 낮춰갔다. 아비투어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정치인들은 더 많은 학생들을 합격시켜 교육정책의 성공을 입증하는데 골몰했다.
그 결과 오늘날 아비투어는 불과 10년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차이를 보일 만큼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나타내게 됐다. 일단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이 과거에 비해 갈수록 늘어났으며 합격률 또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얼마 전 바덴뷰텐베르크 주 지방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 학생들의 아비투어 합격률은 2011년에 98%를 기록했다. 직업학교의 경우도 전문대학입학자격인 파흐아비투어에 응시한 학생 중 94.4%가 합격했다.
정치인들이 이와 같은 결과에 만족하며 교육정책이 성공했다고 축배를 들고 있을 때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 것은 대학이었다. 아비투어에 합격했음에도 전공 공부를 위한 기초지식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 갈수록 많아진 것이다. 결국 자체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앞장선 대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의대다. 몇 년 전부터 하이델베르크 의대는 의대지원자를 위한 자연과학 분야 시험인 TMS(Test für medizinische Studiengänge)를 권장하고 선발과정에서 40% 정도를 반영한다. 10%가 직업교육을 받은 지원자에게 주는 가산점이고 그 대상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50%라고 볼 수 있다. 올해부터는 뮌헨의대와 다른 여러 대학에서도 TMS를 대폭 수용하기로 했다.
아비투어가 선발기능을 상실한 결과는 바로 교육예산의 증가로도 이어진다. 대학입학을 위한 별도의 시험이 생겨나니 교육비는 점점 늘어나고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혼란이 예고된다. 결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아비투어를 불신하게 되면 아비투어는 머지않은 장래에 교육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핀란드와 비교했을 때 독일 교육정책이 실패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핀란드가 저소득층과 학습부진아를 대폭적으로 지원하는 교육정책을 세우고 있을 때 독일은 정치 포퓰리즘의 해법으로 접근한 것이다. 독일의 실패한 입시제도 개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