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 폭력과 학생들의 자살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교육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입시위주의 교육제도로부터 온라인 게임의 폭력성까지 다양한 문제점들이 논의되고 그에 대한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학교폭력 근절 방안 마련이나 대학입시 제도 개혁 같은 거시적인 대책들과 함께 학생들의 인성과 성품을 계발시키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싱가포르에서 강조되고 있는 인성과 시민성 교육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헝수이킷 싱가포르 교육부 장관은 “가치관과 인성 계발을 우리 교육체제의 핵심에 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학생중심의 가치지향 교육(student-centric, values-driven education)을 싱가포르 교육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기존의 인성교육은 바람직한 국가관을 고취시키는데 초점을 맞췄으나 현재 싱가포르의 교육계는 학생 개개인의 성품을 향상시키는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인성 계발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별개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공동체의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시민성 교육이 인성교육과 병행되고 있다.
싱가포르 국립교대의 쟈스민 심(Jasmine Sim) 교수는 “싱가포르의 인성과 시민성 교육의 초점은 학생들이 단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설득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도덕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실제적인 딜레마 상황 속에서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관점을 고려해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경험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더불어 사는데 필요한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싱가포르 학교에서는 인성을 주입식으로 계발시킬 수 없다는 자각에 기반을 두고 실생활의 경험과 밀접하게 관련된 방식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단위 학교별로 모든 교직원들이 함께 참여해 학교가 지향하는 비전과 가치에 대해 논의한 다음 그 가치들을 학교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반영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의 정책들이 재해석되고 교사들이 추구하는 학교의 가치들이 공유되며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다. 그 결과 인성 교육은 다른 교과와 별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영어, 수학, 과학 등 일반 교과 수업이나 방과후 활동과 통합돼 실시된다.
싱가포르 부킷뷰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연극을 활용한 영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부킷뷰 초등학교(Bukit View Primary School)는 영어와 모국어 수업에 연극을 언어 학습과 가치관 계발을 위한 주요 교수법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역할극은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 속에서 도덕적 가치관을 적용하고 성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 학생들에게 연극의 세부내용을 정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해 창의성을 촉진시키고, 조별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책임감을 갖고 서로 돕는 법을 배우도록 하고 있다. 연극 외에도 체험학습과 탐구학습 등을 통한 인성과 시민성 교육이 교과 교육과 통합돼 실시되고 있다.
학생중심의 가치지향 교육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쟈스민 심 교수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과의 지속적인 대화가 인성과 시민성 교육을 준비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예비교사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싱가포르 국립교대에서는 모든 예비교사들이 20명씩 한 조가 돼 환경보호와 같은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되돌아보고 공동체에서의 생생한 경험으로부터 공동체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싱가포르의 인성과 시민성 교육은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를 통합시키고 사회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강조됐다. 그러나 최근 학생 중심의 자율적인 인성 교육으로 전환한 것은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학생들의 사회적, 정서적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부분이다. 싱가포르의 인성과 시민성 교육의 변화가 우리나라의 학교 폭력을 포함한 제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