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검정기준 ‘학습맥락상 타당’ 등 모호한 기준 해석‧판단 심의위원 몫
누군가 해프닝이라고 했다. 작년 7월 도종환 민주당 의원의 작가로서 쓴 작품에 정치적 해석을 달아 삭제하니 마니 하는 논란이 일자,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논란이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 검정기준’을 만드는 것으로 흐지부지 정말 해프닝으로 끝난 것이려니 했는데, 지난 5일 공청회가 열렸다. 그리고 2주일 남짓 지난 19일 교과부가 ‘기준’을 발표했다. ‘도종환’으로 시작돼 ‘안철수’까지 넘어갔던 해프닝은 ‘정치인의 작품은 되고 정치인은 안 돼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그런데 영 석연치가 않다.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를 붙여야만 할 것처럼 뒤통수가 찜찜하다. ‘검정기준’ 마련을 위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작년 12월 전문가 델파이 조사를 시작해 1월까지 2차에 걸쳐 의견을 수렴했다. 5일 열린 공청회에서 쏟아진 의견은 여전히 자의적 해석 가능성이 있는 ‘불완전함’이었다. 하지만 발표된 기준은 공청회안과 같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공청회는 요식행위였던 것이다.
형식적 공청회도 그렇지만, 진짜 문제는 여전히 모호한 ‘기준’에 있다. ‘학습목표에 부합할 것’ ‘학습 맥락상 타당할 것’ 등으로 남겨진 기준에 대한 판단은 심의위원의 몫이기 때문이다. ‘심의위원’에 대한 ‘의구심’만 남은 현 상황에서 아무리 교과전문가와 법률전문가 등으로 자문위원을 보완한들 ‘중립’으로 믿기는 쉽지 않다.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로, 수학․과학은 창의재단으로, 경제는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나머지 교과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 발기발기 찢어진 순간, 상실된 검정기관의 공신력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모두를 납득시킬 중립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교과부장관의 교과서 수정권이나 ‘도종환’과 ‘안철수’로 대변되는 정치인의 범주 등에 관한 논란은 ‘기준’이 없어서 일어난 해프닝이 아니다. 까놓고 말하자면, ‘국가가 무엇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또는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 가’라는 ‘교육의 중립성’ 범주에 대한 아주 기본적 합의조차 안 되기 때문에 일어난 논란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평가원, 국사편찬위, 창의재단, 전경련으로 발기발기 찢어지며 상실된 검정기관 공신력 그대로인데… 기준‧절차 개선 의미 없어”
이번 연구를 주도한 교육과정평가원 측은 교육의 중립성 범주에 ‘국가체제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이데올로기’와 ‘북한 및 통일’이라는 하위 개념을 포함시켰다. 즉, 의무교육인 공교육에서 국가가 “알아야”할 것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다른 해석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뭘 알아야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표현할 수 있으니 “알아야” 할 것 또는 “알고 싶은” 대상을 국가가 결정하는 것은 ‘교육의 중립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립성’의 범주조차 해석을 달리하는 것이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우리의 현주소다. 그러니 ‘정치인은 안 되고, 정치인의 작품은 된다’는 하부 기준을 아무리 세워본 들 무슨 소용일까. 심의하고 자문도 거쳐 재심의까지 한 ‘합의된 기준’이라고 말해봐야 여전히 반대쪽에겐 새로 만든 ‘잡은 자’의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기준’에 불과할 뿐이다.
더욱이 이 기준을 2∼8월 실시되는 검·인정심사부터 적용한다고 하자, 벌써 이런 이야기가 들려온다. 4월 보궐선거를 겨냥해 ‘안철수’ 관련 글을 교과서에서 ‘철수’시키기 위한 ‘정치적’ 포석이라고 말이다. 정말 그럴까. 이번 검․인정 대상에 ‘안철수’가 실린 교과서는 없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