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금 있으면 제32회 스승의 날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학창시절에는 존경하고 본받을 만한 훌륭한 선생님이 한 분은 꼭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지금까지 그리 긴 인생을 살지 않았지만 떠오르는 중학교 때의 선생님 한 분이 계시다.
문득 필자가 학교를 다녔던 그 당시 중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중학교를 다닐 때 한 체육선생님이 계셨다. 매번 체육시간이 되면 그 체육선생님께서는 헌 운동화를 계속 신고 다니셨다.
감사하는 마음이 선생님의 기쁨
처음에는 헌 운동화를 신고 계셔서 단순히 검소하신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반장이 “요즘 운동화 좋은 것도 많은데 선생님께서는 왜 그 헌 운동화만 신고 다니세요?” 하고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체육선생님께서는 “너희 선배 언니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준 거라 정이 많이 들었단다.” 하셨다. 그리고는 “아직 이정도면 신을 만하다”고 웃음을 보이시던 기억이 떠오른다.
때마침 스승의 날을 맞이해 체육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듣고 반장과 부반장을 중심으로 우리 반도 돈을 조금씩 모아서 체육선생님께 새로운 운동화를 선물한 기억이 난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그 다음 체육시간부터는 항상 우리가 선물한 운동화를 신고 다니셨다. 그리고 체육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선물한 운동화가 무척 마음에 드신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스승의 날도 많이 변화됐다. 한 때는 오히려 스승의 날 행사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 대세이기도 했었다. 아직도 스승의 날을 부담스러워 하며 스승의 날 행사를 시행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스승의 날을 기억하고 그날만이라도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꽃 한 송이를 달아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 스승의 날 행사가 구태의연하다고 느껴진다면 요즘도 매년 스승의 날 행사를 가지는 학교 풍경을 참고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어떤 학교는 학생들이 주축이 돼 선생님들의 구두를 닦아준다. 학생들이 구두약과 구둣솔, 흰 장갑을 구매해 하얀 마음으로 선생님들의 은혜를 되새긴다는 의미까지 더했다. 은사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행사를 마련한 학교도 있다. 은사에게 감사하는 스승의 날 본래 취지를 살리겠다는 의도다. 학생들에게 부담은 주지 않고 교직원 간 단합의 시간을 갖는 학교도 있다. 간단한 기념식 후 교직원 체육대회를 열어 모처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매년 스승의 날 당일에 학생들이 모든 선생님을 볼 때 마다 포옹을 해주는 허그 데이를 실시하는 학교도 있다. 포옹을 받은 이 학교 교사들은 사제 간의 정을 돈독하게 쌓을 수 있어 행복한 웃음이 나온다고 행사를 평가했다.
또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을 그리는 캐리커처 그리기 행사를 하는 학교도 있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조금 한가해지기 때문에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을 그려서 학교에 전시를 하는 행사이다. 모든 학생들이 원하는 선생님만의 특징을 골라서 그릴 수 있도록 모두에게 개방된 행사이다. 행사가 끝나면 학생들이 그린 캐리커처를 선생님들에게 전해 준다고 하니 정말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생회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행사라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교총에서는 올해 스승의 날을 전후해 스승 주간으로 기념하기로 했다. 스승의 은혜를 더 많이 기리고 더 크게 감사하는 의미를 담아 처진 선생님들의 어깨를 펴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스승의 날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하지만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표현하는 방법과 말이 다소 서툴거나 어색해도 교사에게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진다. 스승의 날 행사를 매년 이어가고 있는 학교들은 그렇게 스승이 제자를 사랑하고, 제자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모습이 주는 행복을 소중히 하고 여전히 기억에 남는 스승의 날을 보내고 있다.
표현 달라져도 존경은 계속돼야
갈수록 스승의 날의 의미가 퇴색되고 약해지는 것 같아 교사로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런 때일수록 주말을 이용해 어릴 때 존경했던, 꼭 뵈고 싶었던 선생님을 연락해 한번 찾아뵈는 것도 더 의미 있는 스승의 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황과 시간적인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어릴 적 존경했던 선생님께 간단한 전화통화라도 하는 것이 고마우신 은사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