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지향성을 잣대로 제도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제기된 여러 문제점을 분석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고민했습니다.”(8월27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대학입시간소화 및 발전방안 브리핑을 이렇게 시작했다. 예정보다 발표가 늦어지는 과정에서 교육부 기자실을 찾았을 때 언급했던 “정부 내 조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당, 청와대 비서실, 정부 부처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있습니다.”(8월23일)와는 사뭇 다른 설명이었다. 현장과 공교육정상화만을 고민했다고 보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리핑이 진행되는 동안 행간(行間)에 숨은 뜻이 읽혔다. 원인은 당초 1안으로 검토한 2017수능 ‘문·이과 융합안’에 있었다. 교육부는 지난 4월 연구위원회를 조직, 수차례 토의와 전문가 및 대학·고교 관계자 의견을 수렴해 시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시안은 3가지. 현행 틀 유지가 1안, 2안은 절충안, 3안이 융합안이다. 즉 3안은 고교 문·이과 폐지, 수능도 국영수사과를 모두 치르는 것이다. 사회는 내년 도입되는 공통사회, 과학은 올해 도입된 융합과학이 기초수준이면서 해당교과를 모두 담고 있어 적절하다고 했다.
하지만 취재과정에서 3안을 놓고 두 가지 논란이 드러났다. 하나는 대입 틀을 전반적으로 흔드는 것에 대한 ‘조율 과정’에서의 부담과 ‘공통사회’가 ‘수능 출제에 무리가 있는’ 교과서라는 지적이었다. 대입간소화에 방점이 찍혔던 국정과제를 넘어서는 방안이 정치권에서는 부담스러웠을 법하다. 서 장관과 강태중 연구위원장(중앙대 교수)이 1안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면서도 문·이과 폐지에 대한 공론화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한 이유다.
또 다른 논란은 공통사회 교과서 내용체계가 ▲사회를 바라보는 창 ▲합리적 선택과 삶 ▲공정성과 삶의 질 ▲환경변화와 인간 ▲미래를 바라보는 창 등 5개 주제로 구성돼 토의·탐구수업용이라는 것이다. 여름방학에 진행된 연수도 수행평가 등에 맞춰 이뤄졌다. 한 관계자는 “수능 오답시비가 있으면 사회적 이슈가 되는 환경에서 학문베이스가 불분명하면 시끄러울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3안이 채택되면, 교육과정을 개정해 2020학년도부터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17~19학년도 수능은 사회와 과학의 보완교재 등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의문점은 현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는데 뒤늦게 논란이 된 까닭이다. 우선 연구진에 장학사 1명을 제외하고는 교사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크다. 첨예한 논쟁 여지가 있어 시안마련 과정에서 충분히 여론수렴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서 장관의 변명도 일견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공교육정상화’를 제일 앞에 두고 고민했다면, 1안과 3안이 며칠 새 뒤집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 연구진 구성과 시안단계에서 ‘현장’ 의견부터 들었다면, 교과서 논란도 방지됐을 것이다. 문제도 현장에 있지만, 해답 역시 현장에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번 해프닝이 아쉬운 것은 최근 발표된 일반계 고교역량강화방안의 거점학교 도입이나 자유학기제 등을 통한 교사 평가권 강화 등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꿈과 끼의 행복교육’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교육부 원안대로 ‘기초수준의 쉬운 수능과 학생부 중심 내신’으로 대학입시가 움직여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행간’을 읽어달라고 신호를 보내도 제대로 읽히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