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과 만나 종종 이야기를 나누면 학교 행정뿐만 아니라 학생지도와 관련된 불만들이 많은 것을 본다. 체벌이 금지된 상황에서 어디까지 학생들을 징계할 수 있는지 조심스럽기만 하단다. 그런 중에도 ‘머리박고 엎드려뻗쳐’는 안 되지만 두 팔을 올리게 할 수는 있다는 둥 나름대로 가이드라인이 생기는 모양이다.
또한 학생들의 무례한 행동들의 백태가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칫솔을 물고 교무실로 쑥 들어와 교사들에게 치약을 구하는 학생들은 약과에 속하는 편이란다. 심지어 문자 메시지로 교사를 끈질기게 위협하는 학생도 있고 더 나아가 교사에게 구타 행위를 하는 학생들도 있다.
일전에 어느 대학에서 교수들의 무례한 행동 백태 사례집이 발간된 적도 있다. 교수나 교사의 무례한 행동 백태만 공개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무례한 행동 백태도 좀 모아봐야 하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도 오갔다.
제6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랑 캉테 감독의 ‘벽 사이에서’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한 교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교사역을 맡은 주인공은 실제로 교사 생활을 했던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교사 연기는 몸에 밴 듯 아주 자연스럽다.
학생역도 기존 배우가 아니라 파리 20구역 돌토 중학교 학생 25명이 맡았다. 아프리카, 아랍,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모여 있는 구역답게 학생들의 인종 구성도 다양하다. 이 영화에서 학생들의 온갖 무례한 행동들이 펼쳐진다.
교사가 조금만 말실수를 해도 벌떼같이 달려들어 항의하는 학생들, 책을 읽으라고 해도 읽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는 학생, 작문 발표를 희한한 이유를 들어 거부하는 학생, 교사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의 진위를 짓궂게 캐내려는 학생, 수업시간에 마구 치고받고 싸우는 학생들, 팔뚝 문신을 보여주며 여학생을 위협하는 학생 등등, 얼핏 보기에는 도저히 학교나 교실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 프랑수아는 선생다운 위엄을 보이거나 인격적으로 감화 감동을 시키려 한다거나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치사할 정도로 학생들과 끊임없이 설전을 벌이며 맞대응을 한다.
그런데 교사 프랑수아는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다. 언제나 비교적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대응한다. 그렇다고 학생을 논리의 힘으로 제압하거나 설득시키려고 하지는 않는다. 쉽게 이야기하면, 말을 섞을 뿐이다.
무모한 낭비 같은 지루하고 유치한 ‘말섞기’가 기이하게도 어떤 효과를 자아낸다. 비록 다투는 듯이 보여도 성실한(?) ‘말섞기’는 ‘에난티오드로미’, 즉 반전을 일으키는 화학작용을 가져온다.
조금씩 학생들의 마음이 열리고 교사도 학생들의 어려운 처지를 차츰 이해하게 된다.
학생들의 무례한 행동들이 점점 심해지고 많아지는 요즈음, 교사들로서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어 난감해하기 일쑤이다. 그냥 이 상황을 회피하고 외면해버리고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벽 사이에서’의 교사처럼 학생들과의 끈기 있는 ‘말섞기’를 통하여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방향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