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한국계 쿠바인들의 삶을 다룬 송일곤 감독의 ‘시간의 춤’. 1905년 제물포항에서 멕시코행 기선에 몸을 실은 1000여 명의 조선인들. 4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멕시코로 갔던 그들은 노예처럼 혹사당하기만 했다. 그중 300여 명은 쿠바로까지 건너가 주로 에네켄 농장에서 품팔이했다.
에네켄은 사탕수수가 아니라 선인장 종류인 용설란을 가리키는 말이다. 10년 주기로 꽃을 피우는 바람에 100년 만에 꽃이 핀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 용설란은 길쭉하게 잘게 갈라 동아줄의 원료로 주로 사용한다. 인간 세대는 30년 만에 꽃을 피운다고 볼 수 있는데 ‘시간의 춤’은 3세대에 걸친 한국계 쿠바인들의 애환과 꿈을 소박하면서도 정교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마지막 무렵에 망구, 망백 노인들에게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을 던지는 대목이 나온다. 80살이 넘은 어느 노인은 어린 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90세의 어느 노인은 놀랍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고 미소를 지으면서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대답한다. 그 노인은 일생 ‘바로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마음을 품고 살아왔음이 틀림없다. 무슨 심오한 철학을 연구한 것도 아니지만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생관인 셈이다. 90세 노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다큐멘터리의 화룡점정이었다.
하긴 여러 철학자와 종교가들이 ‘바로 지금 여기의 행복’에 대해 역설해왔다. 프랑스 자두 마을 공동체의 명상법으로 유명한 탁닛한 스님은 현대인들은 과거와 미래만 있고 현재는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질타한다. 과거에 대한 회한, 미래에 대한 불안들만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 바로 지금 여기의 행복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내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행복했던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등등의 생각들을 하느라 지금 여기서 붙잡을 수 있는 행복들은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그냥 새어나가 버린다.
최근에 농협 은행은 ‘NH’라는 로고를 ‘노후 연금’의 준말로 말놀이하여 광고하기 시작했다. 미래의 행복을 강조하는 요즘 세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농협 은행의 로고 ‘NH’는 ‘Now Here’의 준말처럼 보인다. 지금 여기의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철학을 ‘NH 철학’이라고 해도 되겠다. ‘NH 철학’에 관한 대표적인 명저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The Power of NOW)'이다. 그 책은 영감으로 가득한 명상서라고 할 만하다.
학교는 미래의 행복을 창출하기 위한 교육에 힘쓰는 곳이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모두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목표를 위해 공부하거나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학생과 교사들이 되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