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이다. 그런 나의 기록을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이 함께 보고 나의 생각에 한 줄 덧글을 달아준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나만의 비밀스러운 일기는 아닐지라도 여럿이 의견을 보태고 고민을 나눠준다면 생각의 폭도, 현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한층 넓어지지 않을까.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나, 친구들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마음의 벽이 무너지는 효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김종렬 대구 경운초 교사는 맞벌이로 부모와 자녀 간, 스마트폰·PC 게임 등으로 친구들 간 대화가 사라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올초 ‘우리반 교육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일기’를 계획했다.
행복일기는 학급에서 하루에 한명씩 학교에서 있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일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해 부모님에게 보여드리고 부모님은 일기를 읽어본 후 덧글을 한줄 기록한다. 그러면 다음날 교사와 학급 친구들이 친구의 일기를 읽어본 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또 한줄씩 적어보는 활동이다.
예를 들어, 친구와 체육시간에 피구를 하다가 다툼이 생겼다는 일기에 학부모는 덧글로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선생님은 둘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조언을 해준다. 친구들은 저마다 “서로 조금씩만 배려하면 그런 말다툼은 없었을거야”, “속상했겠지만 친구랑 싸우더라도 사과하고 오해를 풀면 돼” 등 속깊은 말을 전한다. 다툼의 당사자도 “그런건 줄 몰랐어. 미안해”하며 사과의 말을 건네고 둘 사이의 앙금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학부모들은 자녀 학교 생활에 관심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가 어떤 친구와 친한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자세히는 모르잖아요. 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소통의 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초반 학생들은 일기 쓰기 자체에 부담을 갖고 싫어했지만 차차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들과 선생님, 부모님들까지 함께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자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변서현 학생의 학부모는 “쌓여가는 행복일기를 꾸준히 보면 학급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내 아이가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요즘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머릿 속으로 그려진다”며 만족해했다.
김 교사는 “행복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교우관계도 파악되고 친구들 사이 갈등이 생기거나 고민이 보이는 듯하면 바로바로 학생과의 상담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며 “학생들의 상한 마음과 감성을 치유해 궁극적으로는 학교폭력 예방 효과까지 가져왔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라는 생각으로 인성교육을 위해 행복일기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월 4일과 24일 ‘사과한데이, 사랑한데이’ 행사를 열고 사과하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와 사과를 전해주는 시간을 갖는다. 또 바른 언어 사용을 위해 매달 18일을 ‘On-Off 라인 욕 버리는 날’로 정해 온라인에서는 선플달기 운동을, 오프라인에서는 자신이 한달동안 사용한 욕을 솔직히 적어 욕 쓰레기통에 버리는 행사를 한다.
“학교폭력같은 갈등은 서로에 대한 ‘사과’와 ‘감사’가 없음으로 인해 발생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작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루어지는 이런 활동들은 아이들에게 우호적인 대인관계를 갖게 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