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평준화의 해법으로 '계약형 자율공립학교'를 운영하자는 안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곽병선 한국교육개발원장은 11일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가 개최하고 이군현 교총회장이 진행한 '고교평준화 이대로 좋은가?'라는 심포지엄에서 공립학교는 평준화 정책을 기본으로 유지하되, 공립학교도 자율학교로 운영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자 제안했다. 곽 원장이 제기하는 계약형 자율공립학교는 인사, 재정, 교육과정운영에서 자율성을 갖는 학교로, 미국의 차터스쿨과 비슷한 형태다. 곽 원장은 학교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계약형 자율공립학교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당국과의 계약에 의해서 운영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학교는 주기적으로 학교평가를 받고 그 결과는 공개되며, 실패한 학교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학교개혁을 추진하도록 하고, 개선의 여지가 없을 때는 평준화학교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곽원장은 사립학교는 자율경영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립학교 경영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고, 학생들의 학교선택범위는 학교 위치에 따라 탄력적으로 지정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립학교는 재정을 자율화하고, 국가지침 범위 내에서 교육과정 편성에 자율권을 주고, 자율경영이 곤란한 사립학교는 국가가 지원하여 평준화 틀에서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의 자립형사립고는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방식을 두고 곽 원장은 '평등주의와 시장경제논리의 절충안'인 유럽형으로 분류했다. 절충안의 기대효과로 곽 원장은 공립학교 평준화의 틀을 유지함으로써 교육기회의 복지적 기조를 유지할 수 있고, 제2의 민족사관고 같은 세계 수준의 경쟁력 있는 학교를 각처에 만들 수 있으며 막대한 사교육비를 학교에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발표자인 김진성 전 교장은 칸막이 내에서의 선지원 후배정방식을 제안했다. "우선 각 시·도간에 칸막이를 하고, 각 시·도내에도 몇 개의 칸막이를 해서 선지원 후배정의 국가고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 지역마다 골고루 경쟁이 되살아나고 강남 8학군이나 대치동 특구 현상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고교평준화가 교육의 경쟁원리를 말살했다"며 "학생들에게 학교선택권을 돌려줘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무조건 인문고에 진학하고 보자'는 풍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학교단계에서 진로교육을 철저히 하고 축구고교, 골프고교, 애니메이션고교 같은 특성화고교를 확대하자고 했다.
김형기 논설위원(조선일보)은 30년간 지속돼 온 '고교평준화 찬반 논쟁이 내포한 논점의 혼란과 오류'를 발표했다. 김 위원은 평준화 찬반론의 논점으로 ▲과외병 ▲과열입시▲주입식 교육 ▲위화감의 4가지로 단순화시키면서 이 중에서 과외병과 과열입시, 주입식교육은 현실을 제대로 짚지 못했거나 평준화의 논점으로 삼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준화의 중요한 취지가 망국적 과외병을 없애는 것이었으나 77년 당시의 과외비가 GDP의 0.7%에 불과한 반면 2001년도는 오히려 4배 이상 증가한 3%였고, 고교평준화는 입시고통을 3년간 유예했을 뿐이며, 주입식 교육과 평준화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위화감만이 현재 진행중인 평준화 찬반논쟁의 핵심"이라면서 "평준화 옹호론자들은 평준화가 오히려 계층간의 빈익빈부익부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일침을 놓았다. 평준화가 시행된 뒤 교실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원과 과외로 달려가는 데 여기서 과외비를 낼 여력이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학생으로 갈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평준화 이전에는 가난해도 명문고에 입학해서 신분상승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사다리가 봉쇄돼 버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