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선배 어르신들의 기억·경험
5분 동영상에 담아 온라인 공유
고2 ‘사회문화’ 수행평가로 실시
어른 존중 배우고 지역사회 공감 “할머니는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학교 모든 학생들과 뒷산에 올라가 아카시아 씨앗을 줍고 장에 내다 팔아 경비를 마련했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어렵게 수학여행으로 간 안동 시내에서 가로등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을 신기하게 구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죠. 그 시절 수학여행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학생들에게 소중했는지 알 수 있었고,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생생한 이야기가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할머니를 다시 보게 됐어요.”
서울 송곡여고 박윤주 양(2학년)은 학교 인근 노인정을 찾아 동네 할머니의 일제강점기 시절 수학여행 경험담을 스마트폰 동영상에 담았다. 송곡여고가 2학년 사회문화 교과-도서관 협력수업에 ‘메모로’를 도입해 수행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60세 이상 어르신들의 ‘지나간 삶의 기억’을 찾고 동영상으로 기록, 온라인을 통해 세계의 모든 이들과 공유하는 국제 비영리 단체 및 활동 ‘메모로(MEMORO-기억의 은행·Bank of Memories)’가 새로운 세대 공감 인성교육으로 주목 받고 있다.
메모로 활동은 비교적 간단하다. 젊은 세대가 ‘기억 수집가(Memory Hunter·인터뷰와 영상 촬영 담당)’ 역할을 맡아 어르신들의 과거 기억을 5분 정도 짧은 길이의 인터뷰 동영상이나 음성 형태로 수집한 후 사이트(www.memoro.org)’에 공개한다.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 음성녹음기 등만 있으면 누구나 메모리 헌터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처음 한국에 소개돼 13개교가 학교 교육에 도입했다.
송곡여고가 세대 소통·공감 프로젝트로 마련한 이 수업은 사회문화과 ‘사회문화 현상의 탐구’. ‘사회집단과 사회조직’, ‘사회계층과 불평등’ 단원 수업에서 사회교사와 사서교사가 문화의 발견, 한국현대사 등의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책을 소개하고 함께 수업을 진행한 후 수행평가 과제를 내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이 촬영해온 동영상에는 지역 어르신들의 다양한 인생사가 담겨 함께 보는 의미를 더했다.
사회과 정현주 교사는 “반신반의하며 도입했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이들이 많은 것을 이해하고 배워왔다”면서 “학생들이 자신은 몰랐던 어르신들의 진솔한 과거 경험담을 들으면서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2학년, 9개 반 학생들이 학교 주변 어르신들의 경험담을 귀기울여 듣고, 동영상으로 촬영하기 위해 나서면서 지역사회에 뜻밖의 반향도 불러일으켰다. 학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덕주 사서교사는 “학교 숙제라며 어르신들에게 의미 있었던 경험을 말씀해 주십사 부탁하고, 경청하는 학생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송곡여고가 좋은 교육활동을 한다며 칭찬을 많이 했다”면서 “학생들 또한 어르신들을 통해 중랑구의 역사를 배우고 알게 돼 자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 메모로는…인생 선배인 어르신들의 기억을 ‘사회·문화적 유산’으로 삼아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운동으로 2007년 8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출발했다. 2008년 6월 웹사이트를 개설한 후 유럽연합의 재정 지원 하에 인터넷 서버 운영·관리가 이뤄질 만큼 공익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탈리아 본부를 비롯해 스페인, 독일, 일본, 미국, 베네수엘라 등 전 세계 17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참여해 공식사이트 오픈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