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실험실습조교 겸 강사로 대구 원화여고에서 첫 수업을 시작했다. 교실에 들어선 순간 초롱초롱 반짝이던 45명의 눈동자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학생들을 향해 "여러분들의 눈빛이 정말 하늘의 별빛 같네요!"라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먼저 첫 눈에 반해 사랑을 고백한 교사를 싫어할 학생들이 있을까. 교사 시절 내내 계속된 학생들과의 사랑의 시작이었다.
교사가 ‘천직’으로 느껴졌던 것은 모든 학생들이 그저 사랑스럽게만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구태여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아이들을 좋아하게 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긴 방학 끝에 개학을 하는 날이면 학교로 향하는 출근길에 어찌나 신바람이 나던지 논두렁밭두렁 사이를 훨훨 뛰어갔다.
학생들에게 물리과목이 어렵게 느껴질세라 대학시절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힘과 가속도의 원리’를 가르칠 때였다. 실험실습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5월 5일 어린이날 교내 실험실을 개방했다. 학생들은 좋아하며 실험실을 가득 메웠지만, 주요 과목보다 물리과목을 더 열심히 공부하나 싶어 못마땅한 일부 학부모님들의 항의에 서운한 마음이 북받쳤던 기억도 난다.
정식 발령을 받아 간 봉화 소천중·고는 시골학교라 학생들의 형편이 좋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학교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이 보이면 "선생님이 빵이 먹고 싶다"며 데려가 빵을 사주곤 했다. 대학시험을 앞두고 몸져누운 학생이 눈에 밟혀 직접 죽을 끓여 먹이기도 했다. 다행히 그 학생은 무사히 시험을 잘 봤고 지금은 어엿한 공학박사가 됐다.
학생들은 참 용하다. 본능적으로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의 열정과 노력에 보답한다. 하루는 고3 교실에서 맨 뒷자리에 삐딱하게 앉아 딴청을 부리는 남학생이 눈에 띄었다.
"왜 집중하지 않니?"
"난 대학 안 갈 거니깐 공부 안 해도 돼요!"
참 어처구니가 없는 학생의 대답에 심하게 화를 버럭 냈다.
"그럼 이게 마지막 공부할 수 있는 기회잖아! 더 열심히 해야지!"
내 호된 꾸지람에 공감했는지 반 학생들 전체가 고개를 푹 숙였다.
당시 일주일 동안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학생들을 야단치고 나 역시 심한 몸살을 앓았다. 이후 수업 분위기는 놀랄 정도로 진지해지고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렇게 반항했던 그 학생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났을 때, 직장을 다니다 다시 학업을 지속해 이제는 전문대학을 졸업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때 혼이 났던 덕분이라고 했다.
학생들과 실랑이를 하면서 학기를 보내고 일 년이 지나 학생들이 졸업할 때쯤이면 모든 기력을 다 쏟아내 탈진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신통하게도 또 학기를 시작하면 어디서 그렇게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는지 활력을 찾곤 했다. 아이들이야말로 새로운 에너지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이런 마음에 학생들도 순수한 사랑을 되돌려 준 것 같다. 전근을 가게 되면 운동장까지 눈물바람으로 쫓아 나오고, 결혼을 한다고 하니 "선생님 뺏기기 싫다"며 결혼식장에까지 와서 엉엉 울고 갔다. 요즘에도 이런 학생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학교를 옮겼을 때도 이전에 배웠던 학생들이 멀고 먼 길을 찾아왔다. 함께 동네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고 물장구를 치며 재미있게 놀기도 했다. 눈먼 몇 마리의 물고기들을 잡고선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주인 할머니의 친절로 보태진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얘기꽃을 피웠다. 그 순간은 선생이라기보다 언니고 선배였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학생들을 사랑했던 내가 20여 년 전 어떻게 한순간에 교직을 그만두고 기업경영에 뛰어들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세월이 흘러 19대 국회에 입성해 학교 밖 청소년 등 청소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입법 활동을 하게 된 데도 예전 교사시절 학생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가 바탕이 됐다. 이런 사랑은 목표 달성 위주의 기계적인 학습만을 추구한다면 좀처럼 형성되기 어렵다고 본다. 갈수록 배우고 가르칠 것이 많아지지만, 그래도 학생과 교사 사이에 각별히 만들어질 수 있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출발한 사랑이 중요하다.
‘스승과 제자’라는 단어보다 ‘학생’과 ‘교사’라는 직업이 더 부각되는 오늘날의 관계가 우리의 사이를 더 멀게 한 것이 아닐까! 사제지간이 왜 예전만큼 가깝지 못한 지에 대해선 교사에 부과되는 과중한 행정업무, 사교육에 대한 의존 등 여러 원인이 꼽힌다. 하지만 이것들을 세세히 따지기보다 이끌어주는 입장인 교사가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변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과연구를 충실히 해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높여주는 것은 교사로서 기본적인 임무지만, 여기에 더해 아이들의 정서를 보살펴 주는 것도 교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그리 멀리 않은 미래에는 이제 사람으로부터 직접 지식을 전달받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따뜻한 손길과 마음으로 주고받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어떤 교육수단도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은 단순히 하나의 직업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키워내는 것은 부모와 같은 일이다. 자식을 돌보듯이 학생들을 보살피는 과정에서 정이 싹트고, 지식뿐만 아니라 마음이 흐르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양분으로 아이들은 성장한다.
교사는 마음을 교감하기 때문에 때론 학생들의 표정, 행동, 태도 하나하나에 민감한 영향을 받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교직생활을 보람과 즐거움으로 채워줄 수 있다.
비록 교사의 길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지만 제자들을 굉장히 좋아하고 아꼈던 사람으로서,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런 존재인지 선생님들에게 다시금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더불어 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선생님들은 더없이 위대한 일을 하고 계신다고 말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