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25%만 동의해도 가능…학교 수 확대 ‘고육지책’ 일선 “비전문가 입김에 교육 휘둘릴 수 있는 독소조항” 교총 “교원과 학부모 동의 각각 50% 충족하도록 해야”
서울교육청은 올 하반기 혁신학교 공모부터 교원 동의 없이 학부모 동의만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기존 요건을 대폭 완화해 교원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변경된 요건으로 공모가 강행될 경우 교육주체 간 갈등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시교육청은 23일 ‘교원 또는 학부모 동의율이 50% 이상’일 경우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에서 혁신학교 신청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바꾼 내용을 보도자료와 공문을 통해 밝혔다. 이는 ‘교원 및 학운위 각각 50% 동의’의 기존 요건을 크게 완화하는 방안이다.
시교육청 측은 “올해 법제화된 학부모회의 의견을 더욱 존중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선 교원들은 “교육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방침”이라고 비판했다. 교원들은 “학교를 직접 운영해야 할 교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부모 동의만으로 관철하는 일이 발생하면 해당 학교는 갈등을 피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A초 교감은 “학부모도 교육주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성년자인 학생의 친권을 보유하고 있는 입장에서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면서 “혁신학교처럼 교육 행위와 직접적 관계에 있는 사항을 학부모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게 하는 건 비전문가의 입김에 학교가 휘둘리게 만드는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시교육청은 단위학교에서 학부모 동의가 있더라도 최종 결정은 학운위가 내린다는 점에서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 교원들은 “현재 학운위 위원 중 학부모 위원이 50%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충분히 학부모 의견만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동의율 50%’에 대한 부분도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다. 얼핏 보면 전체 학부모 중 50%가 동의해야 한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50% 이상 참여에 참여자 중 50%가 찬성하면 된다. 즉 단위학교의 전체 학부모 중 25%만 찬성하면 혁신학교 지정 요건을 갖추는 셈이다.
이처럼 신청요건을 쉽게 한 데는 ‘혁신학교 200곳 달성’을 공약으로 내건 조희연 교육감의 조바심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서울혁신학교는 119개교가 지정된 상태로 올해 안에 130개교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B중 교사는 “학부모 동의만으로 혁신학교 지정을 가능케 한 것은 이미 혁신학교가 추진 동력을 잃고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대표적인 몇 학교를 제외하고 제대로 운영되는 혁신학교는 별로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C중 교사는 “혁신학교는 교사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운영되는 학교라고 강조해놓고 이제 와서 교사 동의를 빼도 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서울교총(회장 유병열)은 즉각 성명서를 내고 “일부 학부모만의 동의로 지정될 수 있는 혁신학교 지정을 강력히 반대한다”면서 “교원 동의 50%, 전체 재적 학부모 동의 50% 이상의 조건이 충족돼야 혁신학교를 신청할 수 있도록 요건을 변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교원간의 갈등, 기초학력 저하, 예산의 방만한 운영 등 문제가 지적된 혁신학교의 산술적 확대보다는 대다수 일반학교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