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학원차를 기다리던 몇 명의 아이들이 교실에 남아있었다. 교실 바닥에 둘러앉아 저희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깔깔’거린다. 모르는 척 일을 하고 있었지만 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한 아이만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평소 공부보다는 노는데 관심이 많은 아이가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무슨 고민거리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던 아이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내게로 나왔다. ‘학원 숙제를 꼭 해가야 하는데 계산 방법을 모르겠다.’며 답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학교 숙제건 학원 숙제건 모르는 것을 가르쳐 달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이의 기분도 맞춰줄 겸 ‘당연히 가르쳐 드려야지요.’라는 말로 농담까지 했다. 그런데 아이가 내밀은 문제지를 보니 답을 가르쳐줄 상황이 아니었다.
문제지에는 학교에서 아직 진도가 나가지 않은 부분의 문제들만 있었다. “벌써 이 부분을 배우고 있니?”라고 깜짝 놀라며 물었는데 아이의 대답은 너무나도 쉽고 간단했다. “학원에서 늘 이렇게 배워요.”
‘학교에서 아직 배우지 않은 부분이기에 답을 가르쳐 줄 수 없다.’며 그래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줬다. 내 얘기가 끝나자 남아있던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학원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다. 학교보다 먼저 대충 가르치고 ‘모르는 게 많아 학원에 더 다녀야한다.’고 부모님에게 전화한다는 얘기까지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싫은데 학원은 왜 다니니?” 아이들의 얘기를 듣던 내가 뚱딴지같은 질문을 했다. ‘부모님들 때문에 억지로 학원에 다닌다.’며 아이들은 불만의 화살을 부모님에게 돌렸다.
학원에서 학교보다 먼저 가르치는 것을 선행학습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교육과정에 의해 제대로 가르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학원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대충 배운 것을 빌미로 공부시간에 딴전만 치는 것은 아닌지?
영리가 목적인 학원 교육이 학교 교육을 앞서 간다면 어쩌란 말인가. 학교 교육을 보완하는 피아노, 바이올린, 컴퓨터, 그리기, 글짓기 등의 학원 교육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 아이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지나 푸는 보습학원들이 문제다.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부모님들이 더 큰 문제다.
불만을 털어놓던 아이들이 학원차가 올 시간이라며 부지런히 교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텅 빈 교실에서 ‘아이들의 얘기가 어쩌면 그렇게 정확할까’를 생각했다. 거꾸로 가는 교육에 대한 걱정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