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과 누항의 이야기들이 마치 스승의 날이 빅뉴스로 취급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참다워야 할 날이 오염과 이토로 얼룩져 있어 고쳐야 할 대상으로 누구에게나 공감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스승의 날은 스승으로부터 배움을 익혀 일선에서 일하는 자나 배움을 추구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그의 고마운 정을 잊어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한 묶음의 폐백이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값비싼 물건이 스승의 마을을 기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진실한 선물은 마음의 선물을 떠나서 학생들의 마음 모두 모두에서 우러나는 다양한 창조의 폐백이어야 한다.
몇 해 전의 일이다. 아득히 기억 속에서 사라질 듯, 스승의 날 아침 한 학생이 손수건을 채 포장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선생님, 제가 용돈을 모아서 샀어요”하고 내미는 중학교 학생의 모습이 아직도 영감처럼 떠오르는 것은 학생의 순박한 마음에서 나오는 티없는 맑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선물이란 비싸고 좋은 것만이 한 사람을 감동의 도가니로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 듯 싶다.
스승의 날을 맞이한 이 시점에 인터넷에 돌고 있는 용어들. “촌지 확인하려 교사 소지품 검사” “교사 촌지거부 서약서 강요” “차라리 스승의 날 없애라” “어느 교감의 분노” “바람 잘 날 없는 스승의 날” 등등 참으로 스승의 날이 흑백 스승을 가리는 날로 평가되어 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폐백도 이제는 뇌물로 보는 관행이 돼 버렸다.
선생님께 고마움으로 드리는 폐백이 뇌물 형태로 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스승의 날에 학생이 선생님께 폐백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님이 학생으로 둔갑되어 드린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거기는 순순한 맑음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함축되어 있다. 둘째는 선물의 모양이 하나같이 같다는 것이 특징이다. 꽃을 선물로 하는 데도 우체부 아저씨 아니면 꽃집 배달원이 가져온다. 마치 주문한 사람이 그것을 받는 것처럼 꽃의 모양도 크기도 포장도 일률적으로 같다. 학생의 개성도, 순순함도 없이 빌린 것을 갚아주는 느낌을 준다. 셋째는 폐백의 액수가 크다는 점이다. 뇌물로 보느냐 아니냐는 대가성의 유무로 판단된다. 하지만 법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법(法)이란 한자가 물법자로 해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다운 선물은 이런 액수의 크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 스승을 위한 폐백은 한 해를 마치고 나서 학부모가 자식을 맡긴 담임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것이 아무런 부담도 없고 아무런 대가성도 없어 진정한 고마움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지금까지 스승의 날을 많이 겪어 왔지만 각각의 반에서 여러 학생이 다양한 자기만의 개성을 창조한 선물을 선생님께 보내는 현상은 해가 가면 갈수록 더욱 없어지고,
또 초중고로 순차적으로 올라갈수록 학생들의 개성창조의 의미는 퇴색되어지고, 액수가 높고 비싼 것으로만 취급되는 규격화된 현실이 어느 새 우리 곁에 와 있는 느낌이다. 물질주의로 치닫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것에 휩싸여 가는 교단이 아쉽기만 하다. 스승의 날 폐백이 어느 선물보다도 값지고 보배로워야 할 것으로 인식되어야 할 우리들의 마음가짐이 이미 그것이 타락을 부채질하는 면죄부로 변질되어 가는 오늘이 구름 낀 하늘에서 해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우울하기만 하다.
어느 때는 교단이 부정의 온상으로 대대적인 청산의 대상으로 온 매스컴들이 아우성을 친 것이 언제라고 또 다시 교단의 정신이 사라지고 물질로 얼룩진 전당이라는 사회의 비난이 물결처럼 출렁거리게 하는 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우리 사회가 스승을 공경하는 분위기로 바꾸어 가는 이미지 조성이 부족하다. 그의 오점을 파헤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대대적인 청산의 대상이라고 하여 교단을 흔들어 놓고 그 이후 학생들이 스승에 대한 신임도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그리고 교직에 대한 대학생들의 선호도는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가?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변화되어 가는 교단의 풍토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방안은 왜 표출되지 않을까? 다른 직종과 달리 감수성이 여민한 기성세대들의 자녀를 인성교육 뿐만 아니라 지적 능력도 동시에 교육시키는 현장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