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고교 현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각 대학에서 논술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대입전형에 높은 점수를 부여해 당락에 영향을 주겠다는 발표가 학교 현장 교사에게 새로운 지도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논술이란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주객관적인 근거에 의해 논리정연하게 펼쳐내는데 있기에 누구나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 까닭은 많이 읽고, 많이 써 보고, 많이 생각해 본 깊이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펼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논술의 기본은 어릴 때부터 다듬어져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의 말씀과 선생님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하루 동안 느끼고 경험한 일을 순차적으로 적어 나가는 일기가 바로 논술의 바탕을 학습하는 터전이다. 글이란, 누에가 입에서 실을 토해 내듯이, 자신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논술을 배운다고 학원가를 배회한다는 보도가 매스컴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무엇이 논술인지도 모른 채 부모의 자식에 대한 과잉기대치가 자녀를 학원가로 내몰게 하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본다. 초등학생에게 논술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도 않지만 정작 논술을 배우는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깨우치지 않은 상태에서의 배움은 강요된 수업에 지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논술이 필요하다면 논술 과목이 따로 있지 않겠는가?
논술의 2단계 교육은 독서에 있다.
초등학교에서 논술의 기초를 다지는데 일기를 예로 든다면, 중학교의 논술지도는 독서에서 찾아야 한다. 많이 읽어서 다양한 생각들을 학생들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고, 그 상상의 다양성이 자신의 진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많은 시간이 독서에 할애할 수 있는 때도 중학교 시절이고, 또 다양한 놀이문화도 접할 수 있는 시기도 이때다. 그러기에 중학교 시절 많은 서적을 접하는 수행평가가 이루어져 갈 때 각 교과 담당 교사는 독서에 대한 새로운 지도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수행평가는 각 교과마다 하고는 있는 현실인데, 중학교에서 다양한 독서를 통해 수행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답식 문제풀기, 대상에 대한 조사하기, 시험으로 결정하기 등 수행평가 취지가 각 교사에 따라 다르다.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뒤돌아보면 과연 수행평가가 독서를 넘어선 수행평가만큼 학생들에게 커다란 경험과 학습력을 심어 주는지 생각해 볼 일이라 생각된다. 논술의 3단계 교육은 작문에 있다.
제7차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10학년에 작문이 설강돼 있다. 작문을 통해 비로소 여태껏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보는 것이다. 사리 판단이 올바르게 서고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생각의 집중도를 갖게 되는 청소년 시기이기에 고등학교 시절의 논술은 가장 상상력과 생각의 깊이를 풍부하게 자아낸다. 이런 까닭에 대학에서도 논술을 바탕으로 우수한 학생을 뽑아 보겠다는 취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한 사람이 대학에서도 우수한 창조인으로서 성장해 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 면학실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을 쳐다보며 깊은 명상에 잠겨 본다. 논술 강좌를 개설해 보니 논술 강좌에 참가하겠다는 학생이 많았다. 대학은 가야 하고 논술은 해야 하겠고 그러면서도 논술 강좌에 들어가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그것이 까마득하기만 한 이들의 마음에 그래도 배움으로 인해 다가오는 불안의식을 씻어 버리고자 한 의도는 다분히 존재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의 다짐이요, 자신의 헝클어진 주변을 정리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술은 단순히 생각을 틀에 맞추어 이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태껏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사고의 깊이를 펼쳐내는 데 있다. 인간이 지닌 사고의 틀은 배움이 많을수록 공고해지고 예리해진다. 어느 한 순간의 배움으로 논술이 체계화되고 사고의 깊이를 찾기는 어렵다. 대수능이란 입시를 앞두고 학원가를 찾아 논술을 지도받겠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보다 학창시절 선생님의 지도에 충실히 응하는 것이 곧 논술의 완결에 이르는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