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55만에 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 관광이 현실로 이루어져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박연 폭포와 선죽교를 보던 설렘. 일제강점기에 북한을 오르내리며 건축 일을 보셨던 아버지는 부벽루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시며 아직 어린 나에게 북한 이야기를 자주해 주셨다. 어렸을 때 흑백 사진 속에서 보던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이제는 텔레비전 속에 등장하고 한발 더 나아가 북한 관광의 물꼬까지 터진 지금.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북한을 가르치고 소개하는 일은 늘 시사적이며 교육적이어야 함을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북한을 알게 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자연스러운 접근’이라고 생각해서 문학 작품을 통해서 만나게 하고 싶어서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의식주를 비롯해 말과 글이 온통 남의 나라 것이 판치고 있다. 특히 서양 나라의 것이 판을 치는 현실이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도 예외는 아니다. 왕자나 공주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듣고 읽고 자란 아이들이니 너나없이 공주병, 왕자병이 드는 것은 아닐까?
공주이야기에 빠져서 자란 아이들은 항상 예뻐야 되고 잘 생겨야 된다는 무의식이 자라서 외모 지상주의가 되고 다이어트 열풍에 빠지게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렸을 때 책 속에서 만나는 주인공이 펼치는 이야기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에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들어 우리 문화에 바탕을 둔 동화와, 토박이말로 씌어진 창작동화들의 등장을 무척 바람직한 일이다.
남북이 이념의 벽을 극복하고 대화를 통해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마음과 물질을 나누는 요즘, 서로 우리의 분단 현실을 다루고 통일 문제를 생각하게 하며 우리 민족이 걸어온 아픈 사연들을 아기자기한 우리 토박이말로 쓴 창작 동화는 반갑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에 군 교육청에서 5, 6학년을 대상으로 군 독서토론회를 실시하게 되어서 진행자로 참여하게 되어 나도 아이들처럼 사서 읽으며 무척 감명을 받으며 눈물을 훔친 책이다.
요정이나 환상적인 장면 전환, 끝이 금방 보이는 권선징악의 작품성을 벗어나 옆집에 사는 아이 이야기 같고 이웃집 할머니 이야기,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창작동화이다. 그러면서도 이야기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서 통일 문제와 월남파병, 이산가족 문제, 결손 가정 문제까지 바탕에 깔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어서 아이들의 생각의 폭을 한없이 넓혀준다.
주인공인 송화는 이산의 아픔을 안고 사는 할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외손녀이다. 할머니가 무당이어서 송화는 늘 놀림의 대상이 되어서 외톨이로 자란다. 거기다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마저 10년 넘게 돌보지 않아 할머니와 외롭게 살아가는 소녀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잘 사는 나라의 축에 들면서도 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서 극빈 가정이나 결손 가정이 많아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그들이 겪는 외로움과 좌절을 아이들이 이해하고 따돌리지 않는 따뜻함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을 볼 수 있다.
작가는 말한다. “무당 할머니와 아버지, 손녀로 이어진 한 가족의 이별과 그리움 그리고 만남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 사이의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나아가 우리 현대사에 휘둘린 한 여자의 한 많은 삶을 고리로 하여 전쟁과 분단 그리고 통일의 염원까지 담으려고 했다.” 고. 목돈을 만지기 위해 월남전에 자원입대한 송화의 아버지는 지뢰 파편을 맞아 입원한 병원에서 열병을 앓다가 기억을 상실하고, 만삭의 몸으로 철공소에서 함께 일하던 아내마저 산고로 잃는다.
갓난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어머니에게 맡기고 떠났다가 십이 년 만에 어머니와 딸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가족 해체를 겪고 생활고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창작동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도 없는 그믐밤에 보름달이 뜰 날을 기다리듯,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눈물과 한숨 속에서 씨뿌리기를 계속하는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 책은 동화이면서도 어른들의 아픈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아픔을 대하는 시선이 남다르다. 동화는 아이들만 읽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게 한다. 글 속에 깔아둔 황해도 방언과 자주 쓰지 않는 우리 토박이말은 우리말을 살아남게 하고 있으며 행복한 어른들에게도 가난하고 아픈 아이들에게도 따스한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다.
‘동화는 문학의 규범이다. 모든 문학적인 것은 동화이어야 한다’는 노발리스의 말로 글을 닫는 작가 김향이의 동화에 대한 짝사랑을 다시 읽으며 교실의 우리 아이들이 동화의 주인공임을 깨달으며 다시금 책의 위대함을 마음 복판에 새기게 한 책이다. 이 가을엔 아이들에게 창작동화를 읽혀서 우리 문화의 소중함과 우리 역사를 알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