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과거사 잔재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정부는 친일작가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일본 식민지 시대를 벗어난 지 50년이 지난 현재 일본에 협조한 인물들을 찾아내어 그들로 하여금 민족의 이름으로 부끄러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현재 살아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설사 살아있다 해도 고령이 되어 기동조차 하기 어려운 상태일 것이다. 정작 이들에게 일제 잔재청산이라는 이름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후손에게 오명을 씌우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또 그들의 작품이 현재 교과서에 실려 있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이미 옵션까지 준 상태가 아닌가? 작품은 작품으로, 사람의 행위는 행위로만 취급되어야 할 것인가?
일제 잔재 청산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일제에 많은 협조를 했다거나 친일적인 성격이 강한 문학 작품을 쓴 작가를 친일작가로 불러도 괜찮은 것인지.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 지. 그들의 작품을 왜 이때껏 교과서에 실어 그들의 작품을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게 해 놓고 이제 와서 그들이 “친일적인 행위를 했다” “사상이 친일적이다”라고 가르치게 된다면 과연 학생들은 비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지 걱정스럽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반민법이 국회에서 많은 논란이 된 것도 친일론자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기에 결국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친일론자들은 마치 자기의 세상을 만난 듯, 지금까지 그들 세력이 대를 거쳐 누리고 있는 집안도 있다. 그것을 보고 과연 누구 좋아할 것인가? 세상이 바뀌면 모든 것이 정의의 이름으로 신상필벌의 세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이는 해방만을 믿고 살아온 어진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보여준 시야는 세상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비정상적인 상황이 정의의 이름으로 판치는 사회였다. 이문열 중편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내용이 해방 후의 사회상이 그러했음을 잘 반영한다. 역적이다. 충신이다. 이렇게 흑백을 외치는 시대는 분명 어지러운 세상에서 나타나는 용어임을 역사의 언저리에서도 말해주곤 한다.
한 나라에서 혁명이 발생하여 그 혁명이 성공하게 되면, 그것이 혁명이 아니라 나라의 재건으로 바뀌게 된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왕손으로서의 대접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역모가 성공함으로써 그의 위력은 사육신울 비롯하여 자기의 의사에 반하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리는 위상에까지 이르렀다. 몽고란과 임진란은 또 어떠했는가? 우리의 역사에 TKO패를 당한 전쟁을 보자. 일제 식민지, 6.25 사변, 몽고침입이 아닌가. 이들 전쟁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전쟁을 극복하기 위해 일치단결하였던가 아니면 자국민끼리 파가 나뉘어져 이권을 위해 싸움을 하는 일이 없었던가 되돌아 볼 일이다.
특히 고려 4대 60년간의 최씨 무신정권은 부패와 향락으로 얼룩져 전란 중에서도 궁중에서 향연을 베풀고, 귀족은 99칸이나 되는 궁궐 같은 집을 짓기에 연연했다고 하는 그 흔적이 인천시 강화도 온수리 강남고등학교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정의가 항상 우선권을 쥐고 마지막까지 존재했던 것은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무신들이 문신들의 부패상과 차별에 대항하여 난을 일으켰지만 결국은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권력을 위한 쟁탈전이 끝없이 전개되었던 것도 진정 그들이 혁명을 일으킨 큰 뜻이 있었는지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결과적으로 친일이다. 월북작가다. 혁명이다 등등이 오늘에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부끄럽기만 하다. 시대의 이단자인가 아니면 시대의 불운아들인가 친일작가들은 민족작가들의 영령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하고, 월북작가들은 3.8선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또 혁명을 일으킨 자들은 그들의 행위가 정당하지 못해 후손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는 그 후손들의 삶에 고난과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