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알밤 주우러 가자, 유치원 어린이들도 언니들 손잡고 모이세요."
"야~~~신난다."
그 동안 부지런한 이재춘 주사님이 주워 오신 알밤을 쪄서 우유에 곁들여 3번 나눠 먹은 아이들은 자기들도 알밤을 줍고 싶다고 날마다 졸랐습니다. 비가 와서 못 가고, 바람이 불어서 못 갔는데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수풀 속에 떨어진 알밤을 주우려면 모기 한테 헌혈(?)을 많이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모기에게 물리지 않도록 출발하기 전에 미리 약을 뿌리고 밤송이에 찔리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 주었습니다. 봄과 여름을 보내고 가을로 가는 풍경을 눈에 익히며 꽃무릇으로 붉게 물든 언덕을 올라 야생화들과 반가운 눈 인사를 나누며 전교생이 나들이 가는 '알밤 줍기 체험 학습'으로 아이들 곁에서 누리는 이 행복.
문득 날이 새기 바쁘게 알밤을 주으러 풀이슬로 바짓 가랑이를 다 적시던 어린 날이 그림처럼 떠 올랐습니다. 밤나무가 없던 우리 집은 가을이면 내가 주워 온 알밤을 모아서 부엌 바닥을 파고 땅에 묻어 두시던 어머니 모습이 포개졌습니다.
저장할 방법이 없으니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설날에 쓰시던 어머니의 살림 지혜. 밤송이를 발로 잘 비비면 그 속에 하얀 머리를 하고 튕겨 나오던 알밤을 그 자리에서 까 먹을 때 오도독 씹히는 그 소리까지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영상으로만 남은 유년의 언덕에서 만나는 그리운 부모님! 그리고 한가위에 사촌 언니들 손을 잡고 큰 집에 나들이 가던 그 즐거운 추억이 알밤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오늘을 더듬어 보며 친구들과 쌍동밤처럼 다정하게 지냈던 날들을 떠올리며 살았으면 합니다. 알밤 하나를 먹을 때도 알밤이 익기 까지 함께 한 시간의 의미와 추억을 상기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할 수만 있다면 어린 날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벌레 먹은 밤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그 속에서 함께 살도록 창조된 생명체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이 아이들 모두가 토실하게 살이 오른 알밤처럼 탱탱한 삶으로 자신의 시간을 가꾸기를 바라며 쌍동밤처럼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