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교시를 끝내고 우유를 가지러 가던 6학년 재성이가 급하게 나를 불렀습니다.
"선생님, 새가 죽었는데 어떻게 하죠?"
"그래? 안 됐구나. 어떻게 하면 좋겠니?"
"글쎄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지?"
"예, 땅에 묻어요."
"땅에 묻어주면 참 좋겠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그렇게 해서 재성이는 화단을 파고 새를 묻어주기로 했습니다. 날마다 학교의 교정에서 울던 새일 것입니다. 아마 가족인 새들과 함께 날다가 유리창에 부딪쳐서 죽은 것 같습니다.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새의 눈이 감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이 보고 슬퍼할까봐 재성이와 둘이서 화단을 파고 묻어준 뒤 아이들이 밟지 않도록 떨어진 꽃무릇을 주워다가 하트 모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꼬마들이 달려와서 죽어서라도 행복하라며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해 줍니다. 사람이든 한 마리 새이든지 그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측은지심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죽은 새이니 함부로 하거나 그냥 버리는 것은 아이들의 감성을 상하게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매 순간 어떻게 하는 것이 교육적인 지를 늘 생각해야 하는 선생님의 자리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예쁜 돌을 주워다 새 무덤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슬픈 추억이지만 어렴풋이나마 죽음의 의미까지 간접 체험을 할 것입니다. 한 마리 새의 죽음을 통해 한층 성숙해졌을 재성이와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철따라 피어난 꽃들이 새 무덤을 방문할 것을 생각하니, 내 가슴에 따스한 기운이 지나갑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커다란 것이 아닌 작은 것들임을 생각하며 추석을 앞두고 만들어 준 새 무덤을 어른이 된 뒤에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별 관심없이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을 그렇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고민해 주는 재성이의 따스한 마음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