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자 조선일보는 미래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들여다 보며 미소 지을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뇌성마비 승헌이가 전교회장 됐어요" 라는 기사 제목을 달고 어른들의 세상을 말없이 나무라고 있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울산 송정초등학교 6학년 우승헌 군. 승헌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를 앓아 지금도 말과 행동이 다소 부자연스러운 정신지체장애 1급의 장애우이다.
우사모(우승헌을 사랑하는 모임)까지 조직하여 그의 선거 기간에도 각종 홍보와 활발한 득표활동으로 승헌이가 당선되는 데 도움을 준 친구들도 대견한 아이들이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가진 장애를 상관하지 않고 똑같이 대해 주어 그의 장점을 부각시켰으며 학교 행사나 공부 과외활동 등 모든 일에서 모범이 되고, 솔선수범하는 전교회장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4~6학년 1200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550여 표를 얻어 당당히 당선시켰다.
사이버 수사 요원을 꿈꾸는 승헌이가 사는 세상의 모습을 눈 앞에 그려보며 나까지 행복해지는 아침. 장애를 가진 승헌이를 이처럼 당당하게 키운 그의 부모님이 자랑스럽고,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전교회장에 입후보 한 승헌이와 그의 장점을 믿고 표를 던진 유권자인 학생들도 대견하다.
한편으로 보면 이같은 일이 기사화 될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우에 대한 시선이 바르지 못함을 증명하는 것 같아 서글프다. 신체의 장애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마음의 장애임을 깨닫지 못하고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대열에 합류시키지 못하는 많은 사례들.
취업의 문이 그렇고, 대학을 가기도 어려운 장애우에 대한 편향된 시각 때문에 감추고 사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전에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 '말아톤'도 알고 보면 부당한 대우에 짓눌려 사는 장애우들의 소리 없는 함성이었음을 잊지 않고 있다.
나도 오래 전에 가르친 6학년 제자 중에 한 쪽 팔에 장애를 지닌 아동을 담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학교에서 하는 모든 일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하고 싶어해서 그렇게 한 적이 있었다. 당번 활동에서부터 청소 활동,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하려고 노력하던 모습이 아름다웠던 아이.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동정심으로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을 부모로부터 들었을 때, 감동으로 고개를 숙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살면서 그 학생이 장애우라는 사실마저 망각하고 중학교 배정을 받을 때 입학 서류에 장애가 있는 학생임을 기록하지 않아서 나중에 사유서까지 썼으니, 그 아이가 알았다면 교육청에 항의를 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죄가 없다'고.
초보 시절에 사유서를 쓰면서 얼마나 창피하고 황당해 했던 아픈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지금쯤 그 아이도 어른이 되어서 사회인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으리라. 정상 아동보다 오히려 공부를 더 잘 했고 청소도 더 땀을 흘리고 했으며 꾀 부릴 줄 모르던 모습이 눈 앞에 선명하다. 어쩌다 철없는 친구들이 장난을 하며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놀렸을 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던 모습까지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배운다. 장애도 그가 가진 개성으로 봐줄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모습을 지닌 울산의 어린 친구들과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승헌 군의 모습에서 외모 지상주의로 흐르는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반성한다.
미국 사람들이 존경하는 루스벨트 대통령은 장애를 지닌 몸으로 두 번이나 대통령을 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 앞에서 신체의 장애를 문제 삼지 않은 성숙한 민주주의 정신이 발현된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도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직장에서 학교에서 각계 각층에서 구성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노력을 지속하고 시민 의식도 발맞추어 성숙시켜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