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째 선생노릇을 하고 있다. 임용 당시의 전두환 정권, 그 엄혹한 시절에 비하면 지금 학교는 표나게 민주화가 이루어졌다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심심치 않게 성적비리나 '변태' 교원 사건이 보도되지만, 그것은 일부 사립학교나 퇴출감인 '비교사들' 이야기일 뿐이다.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에 맞게 발빠른 대응을 해나가는 교직사회이건만, 일부 행정실 직원들의 경우 그렇지 못해 교육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곤 한다. 예컨대 이런저런 교육활동 경비를 빼서 쓰려 할 때가 그렇다.
최근 나는 교지제작을 위한 학생기자의 활동경비를 행정실에 요구했다. 물론 교장결재를 득하는 등 정상적 절차를 거친 것이었지만, 행정실 담당직원의 요구사항은 소위 '임시전도'였다. 이것은 교사에게 경비를 일단 내주고 영수증을 첨부하여 정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전임자뿐 아니라 그전 학교에서도 학생이름에 날인한 명단제출로 처리가 되었다. 활동의 주체인 학생들이 직접 수령하는 경비지출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학생들만 활동하는 경우이고, 교사가 인솔하는 경우 '임시전도'로 하는 게 원칙이라고 담당직원이 말했다. 나로선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
교육당국의 분명한 답변을 기대하는 바이거니와 문제는 임시전도가 교권은 안중에도 없는 방식이라는데 있다. 가령 대부분 자가용으로 학생들을 인솔하고 다니는데, 00시에서 00면까지 시내버스 차비가 얼마인지를 일부러 알아내 정산해야 한다니 얼마나 비효율적인 놀음인가!
또한 학생 4명이 자장면을 먹었는데, 그 영수증을 일일이 받아내는 일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인솔하여 교실수업외 교육활동하는걸 칭찬 격려는 못해줄망정 왜 그런 일까지 하게 하는지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특히 교지제작을 위한 활동의 경우 줄잡아 10여회쯤 취재에 나서야 하는데 오죽하랴!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학교예산을 쓰는데 한치의 빈틈이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제대로 된 직원이라면 그렇게 해야 맞고, 소임이기도 할 터이다. 다만 한가지, 행정실은 학교예산을 집행할망정 교무실 위에 군림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다. 내가 알기로 행정실은 학생과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소리 없이 보좌해주는 곳이다.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은 똑같은 사안인데도 왜 전임자와 후임자의 처리방식이 다르고, 또 학교마다 다른가 하는 점이다. 분명 어느 하나는 잘못되었을텐데, 나로선 의아할 따름이다. 만약 두 가지 방식이 다 허용된다면 임시전도는 교사들을 번거롭게 하는 '악의적' 행정행위이다. 결국 그런 교육활동을 하기 싫게 만들 것이 뻔한 방식임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제까지는 내가 좋아 교지며 학교신문 등을 도맡아 지도해왔지만, 그렇듯 사람을 번거롭게 하고 교사로서 초라한 기분이나 은근히 부아가 치밀게 하는 그런 일은 다시 맡고 싶지가 않다. 초·중·고 모든 학교에서 그런 일로 교육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교육당국의 신속한 대처가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