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대회 심사로 수원의 모 고등학교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우연치 않게 교실 출입구 옆 학급 안내에 있는 '급훈'을 보았다. '공장 가서 미싱 할래? 대학 가서 미팅 할래?'였다.
아무리 튀는 급훈이 유행이라지만 우리나라 교사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지? 아무리 인문계 고등학교가 대학 진학을 목표로 두고 있다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물론 담임교사의 속뜻은 자기 반 학생들이 학과 공부에 전념하여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내고 더 나아가 사회에서 출세 내지는 성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이 급훈에는 공장일, 미싱일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남부끄러운 천한 일이고 대학은 멋과 낭만이 넘치는 즐거운 곳이고 거기서 미팅까지 이루어지니 얼마나 좋은 곳이냐는 전제가 깔려 있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가,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학벌 위주의 잘못된 고정 관념도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공장일, 미싱일 없이도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 사회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 어울려 사는 것이다. 모두 소중한 자기의 직업 전선에서 개인의 자아성취와 함께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대졸생도 필요하고 고졸생도 필요한 것이다.
이런 급훈은 세상을 보는, 직업에 대한 편향적인 시각을 심어준다. 대학 나온 사람이 우월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알려 준다. 세상은 그렇지 않다. 배움과 사람 됨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못 배웠어도, 천하고 어렵고 힘든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인격이 훌륭하고 사회에 더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리포터가 이 이야기를 하며 혀를 차자 옆에 있던 그 급훈을 보았던 동료 교감이 "교감 선생님, 요즘 학교에서 젊은 선생님이 교감 말 듣습니까?" 하며 한 수 거든다. 교감, 교장의 장학이 먹혀 들어가지 않음을, 젊은 교사들이 제멋대로 행동함을, 선배들의 지도가 통하지 않음을, 교육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을 암시한 말로 생각된다.
교사의 숙고 없는 잘못된 생각 주입이 그 학급 학생들의 미래에 악영향을 주기에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다. 지금 당장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학생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잘못 각인하여 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이래서 교육은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