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자격증을 폐지하고 교사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이 교장으로 임용되는 교육현장을 상상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교원들의 마지막 보루인 자존심마저 우습게 취급당할 것 아닌가? 신성해야 할 교육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인 사람들이 또 많이 생겼는가보다. ‘공모교장제’ 도입을 위한 초ㆍ중등교육법 및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10월 21일 한나라당 이주호의원에 의해 발의되었다.
교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나 생각할 수 있는, 교직을 우습게 알아도 너무 우습게 아는 국회의원들이나 발의할 수 있는 개정안이라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에서 살펴봐도 울화가 치민다. 대표발의자인 이주호의원이 어떤 사람인가? 비례대표로 초선인 이주호의원을 국회홈페이지 의원광장에서는 미 코넬대 경제 박사, 한국여성개발원 자문위원, KDI 정책대학원 교수로 소개하고 있다. 그의 약력에서 보듯 나눠 먹기식으로 배정하는 국회의 소관위원회가 교육위원회일 뿐 학교현장 경험이 전혀 없음은 물론 개정안을 낼만큼 교육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국회의원이다.
교직은 항상 여론몰이의 희생양이었다. 말 잘하는 사람들은 그럴싸하게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며 여론을 조성한다. 그래서 사회는 말 잘하는 소수가 말없는 다수를 이기게 되어있다. 더구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교원들은 자기들 입맛대로 교육정책을 펼쳐도 순순히 따라줄 만큼 말없는 소수집단이라는 것을 정부나 정책입안자들은 잘 알고 있다.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당함을 주장하는 몇 명의 교원들 쯤이야 밥그릇 챙기기라고 여론으로 몰아세우면 된다는 계획도 있다. 25일 학부모. 시민연대에서 교육수요자의 요구가 반영되는 새로운 제도라며 입법활동을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 않은가.
여론몰이용 홍보물이 없으면 되겠는가? 그래서 내세운 게 바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도입여부 및 공모교장의 심사ㆍ선발을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공모교장제의 도입여부와 공모교장의 심사ㆍ선발을 결정할 만큼 지금 각급 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가 성숙되었는지 묻고 싶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사를 거친다는 허울아래 불량품 교장을 양산할 것이기에 분통이 터진다. 교사자격증이 없는 사람들까지 교장으로 임용하려는 공모교장제와 군인들이 정치를 주무르던 시절 군에서 제대하는 영관급 장교들이 정부산하기관의 중요 보직을 차지하던 낙하산 인사와 다를 게 무엇인가? 그 시절 군 출신들이 정부산하기관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직원들을 분열시켜 국민들에게 얼마나 폐해가 컸었는지 알고나 있는가?
이쯤에서 왜 교육이 어려운지를 생각해보자. 교육학을 전공한 교사라는 집단만이 할 수 있는 전문직이기 때문이다. 왜 교육이 잘못되면 안 되는지를 생각해보자.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교육정책이 잘못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왜 교원들이 마음상하면 안 되는지도 생각해보자. 교원들이 즐거워하면서 소신을 펼칠 수 있으면 아이들은 저절로 행복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교육계의 현안과 중요성이 여론에 의해 잘못 전달되는 게 아쉽다. 흔히 말하는 집단이기주의나 밥그릇 챙기기라는 명분으로 교육계가 매도당하는 게 안타깝다. 그렇다면 평교사로 정년퇴임을 하는 게 소원인, 정년퇴임을 하는 날까지 아이들과 교실에서 생활하겠다는 약속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내가 왜 ‘공모교장제’를 싫어하는지는 들어봐야 할 것 아닌가?
‘공모교장제’라는 명분을 앞세워 초ㆍ중등교육법 및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당신들이 만들어 논 잘못된 교육정책 때문에 교원들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그렇게 중요한 정책이라면 당사자인 교원들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라도 할 수 없느냐고?
승진의 지름길이라는 부속학교까지 근무했던 내가 왜 관리자보다 평교사로 사는 것을 고집하는지 아는가? 미주알고주알 자세히 얘기 하지 않아도 이해할만한 사람들은 안다. 학교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관리자와 교사의 역할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쉬운 얘기로 관리자는 욕 얻어먹기 쉬운 자리라는 거다. 더 자세히 말하면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내가 감내할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장과 교감의 할 일이 따로 있고, 교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관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순진하고 명랑한 아이들의 힘찬 숨소리가 학교에서 들려오고 있지 않은가? 교육현장 곳곳에서 보이는 아이들의 땀방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자식사랑이 넘쳐나는 학부모님들이 있지 않은가? 교직의 전문성을 무시한 잘못된 정책으로 40만 교원들의 자존심을 짓밟으며 교육의 질을 저하시킨 게 얼마나 되었다고 교육계의 뒤늦은 행복을 또 시샘하는지 모르겠다.
그놈의 힘이 없어 기분상해도 당신들이 하라는 대로 하던 내가 이주호의원 같이 정책입안을 잘하는 국회의원들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다. 아이들의 사랑이 넘쳐나는 학교에 비해 국회의사당에는 임기동안 세비만 축내는 국회의원들이 참 많다는 걸... 국민들에게 손가락질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는 국회의원들이 더 많다는 걸... 그래서 밥값은 한다는 걸 알리는 과시용으로 너도나도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느라 국력을 낭비한다는 걸... 그렇다고 밥값 하기 위해 잘못된 교육정책을 양산해서는 안 된다는 걸... 밥값 하기 위해 일으킨 쓸데없는 분란이 의정생활의 오점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라는 걸...
교육의 실상을 너무 몰라 기억하기조차 싫은 이주호의원에게 이 한마디만은 꼭 가슴 속에 새겨둘 것을 부탁한다. 요즘 선생님들 옛날 선생님들과 다르다는 걸... 생각도 없는 당신들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공모교장제 절대 당신들 맘대로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교원집단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 이번 기회에 보여줄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