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 현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았던 미세한 먼지들이 교실 곳곳에 산재해 있어 교실 환경을 혼탁하게 하듯, 학생들이 교사에게 대하는 불손한 행위들이 각 학년 곳곳에서 일어나 학교 인성 교육에 새로운 불씨로 등장하곤 한다.
학생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표어 같은 문장은 이제는 케케묵은 장식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지시해도, 불러도, 협조를 구해도 선뜻 대답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한참 생각하였다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곤 한다. 그러기에 정도를 가르치는 선생님과의 사이에서는 신세대 학생들의 행동이 쉽게 용납되기 어렵다.
또 학부모님도 이런 일들을 알고 있는 지, 모르고 있는 지 학생들의 편에서 이야기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뭄에 콩 나듯, 바른 교육을 외치는 선생님은 불손한 학생이 있으면 즉시 부모님을 학교로 소환시켜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리고 가정교육의 바른 지도를 논의한다. 그러면 어떤 부모님은 자식을 잘못 가르친 부모 탓이라며 사죄하며 더 좋은 지도를 당부한다.
하지만 어떤 학부모는 선생님이 학생을 꾸짖어 뺨을 몇 차례 때렸다고 학교로 달려와 교육청에 알리겠다. 심지어는 더 심하게 하겠다는 등 교사에게 엄포를 주는 경우도 있다. 학교 현장에서 사사건건 일어나는 것으로는 학생과 교사간의 시시비비가 학생들 간에 일어나는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은 학생들이 교사들의 부름에 응하는 겸손은 점차 약화되고 있음이 아닌가 싶다.
요즘 일부 학생들은 비속어를 잘도 발설하고, 거짓말도 순간순간 표현하는 것이 교묘할뿐더러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기를 넘기려는 임기응변도 기성세대를 능가할 정도다. 예전의 학생과 오늘날의 학생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은 이제는 학생과 부모, 그리고 교사간의 긴밀한 유대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관리를 망원경으로 사물을 보듯 관찰하게 되었으나, 지금의 학생 관리는 현미경에서 대상을 찾아내듯, 학생들 행동을 밀도 있게 관찰하지 않고서는 학교 곳곳에 산재해 있는 먼지처럼 보이지 않고 있어 원만한 학교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다. 낭만과 만화 장면 같은 화기애애한 교정의 분위기는 가을의 단풍처럼 사라지고 겨울 나뭇가지에서 느껴지는 앙상함만이 교사와 학생 간에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성장 욕구가 극에 이르러 예민한 감수성을 밖으로 표출하는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려는 시기인 탓에 타인의 조언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교사의 지도가 학생들에게는 때로는 간섭으로 다가가고, 때로는 언어폭력 정도로 나타남으로써 교사와 학생간의 마찰은 자연히 일어나게 됨이 교정의 풍속 아닌 풍속으로 다가오는 감이 있다. 게다가 대학 입시라는 고달픈 학업이 자신들을 피로로 몰아넣음에 따라 움직임이 수동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것을 마치 죄의식 없이 생각하고, 자신의 주장을 자신의 의사대로 해석하는 마녀재판의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이들의 심리를 치료하고 지도하는 데는 단순한 지도로만 충고로만 이루어지는 학생지도는 이제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손자” ‘모공편’에 나오는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글귀가 자꾸만 생각나게 되는 것도 요즘 학생들의 지도방법에 적용의 미를 덧붙여 보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