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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발한다!(J'Accuse!)'


「나는 고발한다!」(J'Accuse!)

우리나라와는 먼 곳 프랑스이지만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참조하여 길지만 프랑스의 얘기를 하나 해야겠다.

때는 19세기 말, 프랑스 정보국에서는 누군가 내부에 독일 스파이가 있음을 알게된다. 내부 소행자를 잡기 위한 함정과 계속되는 스파이 행위. 그러던 중 정보국 소속 에스테라지가 돈을 목적으로 독일의 무관 슈바르츠코펜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에스테라지가 독일에 넘긴 것은 프랑스 정보국이 내부 소행자를 잡기 위한 함정이었다. 또 그가 슈바르츠코펜에게 직접 전하지 않고 우편함에 넣은 정보, 명세서가 프랑스 정보국 첩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에 프랑스 정보국은 이미 확보하고 있던 D라는 사람이 유력한 스파이라는 정보와 명세서의 필체만으로 범인 잡기에 나섰다.

그 결과 평범한 유대인 장교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는 스파이로 지목됐다. 그 이면에는 프랑스 국민들이 잠재되고 있었던 반유대주의와 1870년 보불전쟁에서 패한 뒤 생긴 안보에 대한 불신 등이 작용한 것이다. 정확하지 않은 증거와 본인의 무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드레퓌스는 군법회의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남아프리카 孤島로 유형된다.

하지만 그의 형 마티외 드레퓌스의 끈질긴 항의와 진실을 알고 바로잡으려는 신념의 피카르 대위, 양심적인 지식인, 법률가 등 이른바 '재심 요구자'들로 인하여 투쟁은 계속된다. 그리고 이 재심 요구는 클레망소가 운영하는『로로르』(L'Aurore : 여명)지에 당대 대문호인 에밀 졸라의「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글을 기고, 드레퓌스를 유죄로 몰고 갔던 이들을 고발하면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즉, 다시 드레퓌스의 일이 논의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 국민들에게 퍼져있던 사상은 하나의 강한 프랑스였다. 보불전쟁에서 패하고 독일에게 위협받는 나약한 프랑스를 살릴 수 있는 것은 강한 군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군대에서, 그것도 가장 큰 권위를 갖고 행해진 군법회의의 결과를 되돌려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프랑스 국민들을 반드레퓌스화로 가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인 것이다. 에밀 졸라 역시 재판에 회부되고, 급기야 영국으로 망명을 하게 된다.

전세계에서는 이런 프랑스의 비민주적인 행위를 두고 여려 개탄이 쏟아지지만 에스테라지를 위시한 군부의 압력으로 에밀 졸라는 유죄를 선고받게 되고 에스테라지는 영웅적 대우를 받게 된다.

그러나 1898년 예기치 못한 곳에서 에스테라지와 함께 사실을 왜곡하던 앙리 중령은 자신의 행위가 밝혀지자 자살을 하게 된다. 에스테라지는 외국으로 도피하여 자신을 '이중첩자'라고 밝히는 내용의 책을 출판되고 드레퓌스의 사건은 자연히 재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재심의 결과는 정상참작. 뚜렷한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드레퓌스가 받은 것은 정상참작으로 금고 10년이었다. 전 세계적인 항의와 다음해 열리는 프랑스의 세계박람회를 보이콧하자는 결의가 이루어졌다. 이에 위기에 몰린 프랑스 정부가 1899년 9월 19일 드레퓌스에게 무죄가 아닌 특별사면을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프랑스 국민들을 둘로 나뉘어지게한 하나의 사건은 막을 내렸다

장광설이지만 프랑스의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오늘 오후에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실험용 난자의 취득에 있어 비윤리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황박사의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엊그제 문화방송 팀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고발한 바 있다. 그 방송이 나간 후 담당 PD들에게 험한 욕설을 넘어 입에 담기 힘든 협박조의 전화가 걸려오고, 휴대전화에도 보기 섬뜩한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여러건 보내졌다고 한다.

이쯤 된다면 황박사에 대한 애정을 넘어 이성적 비판을 마비시키는 狂風 수준이다. 필자 또한 노벨상에 버금가는 커다란 업적을 이루어 놓은 황우석 박사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연구로 인하여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완쾌될 수 있다면 그 선행은 어떤 것보다 칭송되어도 마땅하다. 하지만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과정상에 비윤리적이고 위법한 행위가 있었다면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물론 필자는 황우석 박사가 불법으로 실험용 난자가 취득되었다는 것을 몰랐으리라 믿고 싶다. 그리고 그는 그랬을 것이라 믿는다. 오히려 작은 상처가 크게 곪아 사람의 몸을 망치게 하기전에 환부를 미리 도려낸 것으로 생각하고 황박사가 연구에 더 매진할 수 있도록 우리는 도와주어야 한다.

현 시기 우리 국민들이 할 일은 비이성과 잘못된 애국심에 근거하여 진실을 밝혀내려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잘못된 비판을 삼가는 것이다. 진실을 밝혀 내려 했던 사람들을 단지 특종을 위해 매몰된 사람들 이었다느니, 한국 사람들은 남 잘 되는 것을 못 본다느니 하는 자기학대적인 표현으로 매도하지 말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에 있는 교육가족들은 냉정하고 이성적인 관점에서 이번 사건을 접근하고 가르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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