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지 못한 아픈 기억이 나에겐 있다. 졸업 후 집 근처에 있는 서당을 다니게 되었다. <동문선습>이라는 책을 사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훈장한테 큰절로 아침인사를 드리고 글을 읽고 쓰는 일을 하루 종일 반복하여 다음날 훈장님 앞에서 벽을 보고 돌아 앉아 전날 배운 것을 암송하고 나서 외워서 써야 다음 진도를 나가게 된다.
책 한 권을 다 배우고 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해야 ‘책씻이’를 하는 의식을 가졌다. <동문선습>을 모두 외우고 나서 화장실을 갈 때는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 어지러웠고 소변이 노랗게 나왔던 기억이 난다. 책 한권을 다 배우면 떡과 음식을 준비해 와서 학동들과 나누어 먹는 것을 ‘책씻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 <명심보감> <소학>까지 배우고 시골에서 신학문을 공부한 막내 삼촌의 권유로 다음 해에 집에서 20리길을 걸어서 다니는 중학교에 입학하여 다녔다. 동창들보다 1년이 늦었지만 1년간 서당에서 배운 한문 공부는 학창 시절은 물론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지금 생각하면 서당공부는 배운 것을 모두 알아야 진도를 나가니까 완전학습이요, 능력에 따라 배우는 진도가 다르니까 수준별 학습을 한 셈이다. 학습 시간과 공간이 자유로운 열린 학습도 가미된 공부를 한 것이다. 학동들끼리 쉬는 시간에 다양한 놀이를 즐겼으니 체육도 했고, 글을 읽을 때 운율에 맞추어 노래하듯이 읽었으니 음악도 한 셈이며 사군자도 배우며 미술도 공부하였다.
서당 제도는 오늘날의 교육에서 본받을 만 한 점도 많이 있다. 우리 것을 업신여기고 외국의 새로운 학습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풍토가 맞지 않는 이 땅에 심으려고 했으나 착근이 잘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본다. 외국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제도들을 들여와서 온 나라에 확산시켜 보았지만 남의 옷이 우리 몸에 맞을 리가 없다.
한때 열린교육 열풍이 불어 교실 벽을 허물고 바닥에는 양탄자를 깔고 서구식 학습 환경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칸을 막는 공사를 하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하드웨어도 풍토에 맞아야 하지만 소프트웨어에 해당되는 제도를 고치는 일은 더 신중해야 한다. 남의 나라에서 그럴듯하다고 하여 거름 장치도 없이 직수입하여 적용하려는 시행착오는 범하지 말아야겠다.
학교운영위원회, 교장 초빙 공모제, 교원평가, 방과 후 교육활동 등도 성공하려면 한국화의 과정을 거쳐서 학교현장에 도입해야 성공 할 수 있다.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잘 자랄 수 있게 개선한 제도를 마련한 후 시험운영을 수년간 하여 완전히 성공을 거둔 다음에 점진적으로 확산하면서 전면 시행을 해야 그 제도가 튼튼한 뿌리를 내리며 정착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교육도 장점을 살려서 독특한 우리 제도로 성공을 거두면 새마을 운동처럼 외국에서 배워가려고 하게 된다. 우리 것의 장점도 많은 데도 불구하고 우리 것을 발전시켜 키우려는 노력보다 손쉬운 외국의 제도를 받아들여 조급하게 시행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우리 것의 장점을 찾아 키워나가는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우리 교육도 세계 속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