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셀러리맨에게 다가오는 인사이동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심리적인 잠재력에 향수마저 불러일으킨다. 삶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 지, 그것을 누가 알 수 있겠느냐마는 여항에 살고 있는 사람이야 항상 믿음과 사랑이 넘치는 일과였으면 하는 바람 외 무엇이 있으랴 싶다.
아우성치는 연말의 인사이동은 희비를 자아내곤 하지만, 인사는 만사라는 말은 언제나 자타가 다 공인하는 바다. 그러기에 관리자의 소신과 비관리자의 믿음이 서로 어우러져 보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교사는 대체로 욕심이 없다, 명예를 먹고 산다 등등으로 혹자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은 인간의 본원적인 의식은 한 곳에 고정되지는 않는 것 같다. 대상에 따른 다양한 변화와 접촉으로 계층간의 위계와 갈등이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는 사이에 도시화되고 서구화되어 가는 도심의 추이에 따라 인간의 의식도 빠르게 현실적인 사고에 물들어 가기 마련이다.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변화를 수용하려는 샘터 역할을 하는 학교는 교구재의 현대화에 따라 교실에도 화려한 전자장비들이 배치됨으로써 학생들의 눈을 유혹하게 했고, 이에 교사도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려고 백면서생이라는 칭호도 현실주의 사고에 희석시켰다.
불가의 대명사 석가가 화려한 궁중생활을 버리고 수없는 시간을 투자해 고행의 과정을 겪은 것은 인간의 진실한 고행을 깨치고자 한 것이다. 그가 얻어낸 사실은 “인간은 먹어야 산다”라는 평범한 진리였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을 석가는 왜 그랬을까하는 궁금증만이 남게 된다. 그것은 불가의 법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목적은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부터 깨쳐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명언을 암시하는 것이다.
공자가 한 나라의 제왕이 되지 못함은 무(武)를 강조하는 시대에 인(人)의 중요성을 초지일관 지켜갔기 때문이었다. 공자 또한 석가처럼 무의 중요성을 몰랐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무의 중요성을 공자까지 강조하고 나섰다면 춘추전국시대의 쟁탈전은 약육강식이라는 단순한 이미지 외는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봉사와 명예 그리고 깨끗함을 자랑하는 교직의 대명사에 최근 교장공모제, 교장초빙제, 교사초빙제 등등의 용어가 언론에 드러날 때마다 교직에 대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이미지를 연상하게 된다. 사회가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인간의 의식이 변하면 당연히 배움의 과정도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과정이 교직에 대한 신선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빚어진 결과로 나타나게 되어 인사를 새롭게 시도하겠다는 이미지가 확산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교직이 명예와 봉사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오늘날 학부모들은 그것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대의 추이도 따라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교사라고.
교사는 교직에 종사할 때 교사답고 학생 앞에 섰을 때 신성한 이미지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누구를 위해 자신이 존재하는 가를 먼저 생각한다면 연말을 보내는 인사철의 이미지는 한겨울에 스쳐가는 바람과 따뜻한 봄날에 느끼는 따사로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사철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이런 말 저런 말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지켜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관리자도 신상필벌의 정신으로 자신의 소임에 정진한다면 교직 사회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