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릴지 걱정되는 아침입니다. 장난꾸러기 악동들은 아침 8시부터 교실에 와서는 집에 가는 시간까지 내게 쉴틈도 주지 않으니까요. 참새처럼 쫑알대는 아이, 쉼없이 옆 친구를 건들고 소리지르는 아이, 밖에 나가면 교실로 들어올 줄 모르고 놀아버리는 아이, 온종일 돌아다니며 누렁코를 달고 다니는 아이....
그래도 집에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늘 행복합니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기때문입니다. 나도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아니, 내 아이를 19명이나 더 낳아 기르는 기분이라고 말하렵니다. 쉬는 시간에도 안전사고가 날까봐 아이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운동장 가에서 아이들을 물가에 내놓은 엄마오리처럼 종종대는 내 모습이 결코 싫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제는 우리 반 소리대장 우승현이 때문에 참 행복했습니다. 나만 보면 큰 눈을 껌벅이며 매달려서 늘 말하고 싶어하는 귀여운 아이. 집안 사정으로 할머니와 사는 그 아이는 나를 엄마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장난감 병에 빨간 실이 매달린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려고 애쓰기에 물었습니다.
"이걸 왜 주려고 하는 거니?"
"그냥요."
"그냥이면 안 할래. 이유가 있어야지."
"선생님을 사랑하니까요!"
꼬마 친구에게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이 나말고 또 있을까요? 이런 행복, 천진한 사랑의 언어에 나는 다시 하루의 피곤을 잊고 다리가 부어오른 통증도 이겨내며 하루를 살다 가는 이 교실을 사랑하나 봅니다. 어제 걸어준 실목걸이를 다시 목에 걸며 생각합니다. 행여라도 우리 승현이가 선물한 이 목걸이를 오래도록 걸야 할까 봅니다. 빼더라도 승현이의 허락을 받아야겠지요?
모두 다른 개성을 가진 19명의 아이들을 내 품에 다 안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아이들의 가정도 양극화 현상이 심해서 상처가 많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과잉보호로 스스로 하기를 싫어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도 있는 교실. 벌써부터 목이 쉬고 몸살 기운이 엄습하는 3월의 문턱에서 아이들도 나처럼 힘들어 할 거라고 생각하니 안쓰럽습니다.
어제보다 밥을 다 먹은 아이가 많이 늘어나서 별점을 받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내일은 오늘보다 더 즐거운 교실, 아이들이 오고 싶어하는 교실을 만들 꾀를 생각하는 중입니다. 놀이처럼 즐겁게 공부할 '그 무엇'을 날마다 생산해내는 발명가를 꿈꿉니다.
옛말에 선생의 ( )은 개도 먹지 않는다고 했는데 속이 썩으면서도 매가 아닌 말로, 사랑으로 보듬으려 하니 참 힘이 듭니다. 교직은 어찌 보면 3D 업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옆반 선생님이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아이의 잘못을 고치게 하려고 꾸중을 했더니 집에 가서 자기 잘못은 쏙 빼놓고 항의 전화를 받으셨다며 마음 아파 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들 급식지도까지 하시느라 점심 밥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는 그 선생님은 3월 초인 지금 벌써 몇 킬로그램이나 몸이 빠질만큼 학급 아이들 문제로 힘들어 하십니다. 단 1년을 근무하더라도 자신이 있는 동안 맡은 아이들의 인성과 학습력 향상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벌써부터 태클(?)을 당하니 자꾸만 용기가 가라않는다는 말씀을 들으며 위로의 말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선생님! 그래도 힘을 내세요. 명마는 뒤를 돌아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빛나기를 바라지 않으며 아이들이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도록 밑거름의 구실을 할 따름이니 그 나무가 열매가 되어 뿌리의 소중함을 잊더라도 슬퍼하지 맙시다. 어버이처럼 내리사랑으로, 끝없는 인내로 진심을 다 하며 마음을 비우고 삽시다. 철모르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선생님을 사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