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오늘은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날인 일명 '화이트데이'이다. 그래서일까? 등교를 하는 아이들마다 양손에는 사탕이 쥐어져 있었다.
교무실에 도착하자, 선생님들 책상 위에는 학생들이 갖다 준 사탕들이 놓여 있었다. 몇몇 선생님들은 사탕을 먹으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하였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 너무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틀에 박힌 일상적인 생활의 연속성에서 작은 행동 하나가 활력소가 될 때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우리 학급의 한 여학생이 교무실로 찾아와 불쑥 흰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순간적이지만 내심 이상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웬 봉투니?" "선생님, 글씨 좀 써주세요."
"무슨 글씨를?" "있잖아요. 누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돈을 주어야 하는데~."
"부조를 하려고 하는구나." "네, 맞아요. 그런데 누가?"
"선생님도 O반 OO이 아시죠? 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1학년 때 같은 반 아이들끼리 돈을 좀 모아 전해주려고요." "그래, 정말이지 좋은 생각을 했구나."
나는 그 아이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흰 봉투 위에 '부의(賻儀)'라는 글자를 붓 펜으로 정성들여 써주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교무실 밖으로 빠져나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사실 자신만 알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수업 시간을 통해 아이들을 감화시킬 수 이야기를 준비하여 해주곤 한다.
아이들은 호주머니 속에 있는 푼돈으로 사탕을 사는 것 대신에 친구를 위해 부조금을 모은 것이었다. 돈의 액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친구를 위한 아이들의 작은 정성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화이트데이' 사탕보다 더 달콤한 우정이 아이들 사이에서 피어난 날. 이 사회가 아직까지는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느끼는 날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탕은 먹으면 먹을수록 없어지지만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