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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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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24년 전 제자 목소리에 행복했어요


"장옥순 선생님이세요?"
"저는 000인데 기억하시겠어요?"
"그럼, 기억하고말고 24년이 지났지만 잊지 않았지."
"어젯밤 꿈에 선생님을 보아서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려서 전화를 드립니다. 너무 오랜만에 연락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
"아니야, 참 반갑고 고마워!"

이젠 30대 중반이 된 제자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면서 공직자로 살아가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제자입니다. 교단 3년차를 맞으며 가르쳤던 6학년 소녀는 이제 인생의 중반을 향해가며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친구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헀던 소녀는 자취 생활을 하던 내 방을 생쥐처럼 밤마다 찾아와 책을 읽고 친구처럼 지냈던 제자입니다.

2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제일처럼 눈에 밟히는 자취방에서 소녀와 함께 끓여 먹던 라면, 밤늦도록 한 이불 속에 발을 집어넣고 장난질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철없던 초보 선생은 아이들과 하루 종일 같이 지낸 교실의 시간도 부족해서 퇴근도 같이 하고 밤에는 내 자취방으로 모여 책을 읽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깔깔 댔던 시간들.

그 때보다 훨씬 시설이 좋아지고 자동화된 교실이지만 그 때보다 더 바쁘고 힘든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요? 지금보다 두 배나 많은 40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실이었지만 지금보다 더 힘들지 않았다고 기억되는 것은 과거라서 고운 추억만 남은 탓일까요? 방학이면 몇 번의 편지를 나누며 마음을 나누던 제자들,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매번 축하 메시지를 보내거나 주례를 부탁하던 제자들을 남긴 유별난 인연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엄연한 어른이니 반말을 하기도 힘들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호칭때문에 전화를 받는 동안 자주 머뭇거렸습니다. 많이 늙지는 않았는지, 건강은 좋은지 물어오는 제자는 글쓰기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소녀였음을 상기하며 지금부터라도 활동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감추어둔 끼를 발산할 기회를, 공부할 시간을 가지라며 잔소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만날 것같은 예감으로 즐거운 저녁을 맞으며 다시금 젊어집니다. 24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이 자리를 생각하니 짧은 1년, 200여일이 결코 짧은 만남이 아니란 걸 절감하게 됩니다.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마음으로 기르고 다독이며 아이들의 가슴 속에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힘들 때 즐거울 때, 함께 늙어가는 사이로 만나며 인생의 도반이 될 인간관계로 가꾸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먼 후일 돌이켜 생각할 때, 나와 함께 살았던 그 교실을 즐겁게 반추해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꼬깃꼬깃 숨겨놓고 힘들 때마다 꺼내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24년 전 제자의 목소리는 나를 다시금 긴장하게 만듭니다. 학기초라서 이것저것 바쁜 와중에 까딱하면 아이들을 놓치기 쉬운 시간이 되지 않도록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내일은 우리 반 개구쟁이들을 몰고 봄꽃들이 부르는 교정을 돌아보며 봄나들이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갇혀 지낸 교실을 벗어나 운동장으로 가야겠습니다. 펄펄 살아 뛰는 아이들이 달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호랑이팀, 사자팀으로 나누어 이어달리기 하는 경주를 매우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의 상기된 볼이 벌써부터 그려집니다. 내일은 엉덩이에 뿔이 난 아이들의 터질 듯한 목소리가 마량 앞바다를 건너오는 바닷바람에 실려 마알간 하늘에 울려 퍼지는 시골 학교의 운동장 풍경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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