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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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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선생님도 같이 책을 읽어요


"1학년 친구들, 일찍 와서 책을 보니 참 예뻐요."
"선생님은 책을 보는 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우리 같이 책을 볼까요?"
"예, 선생님!"

아침 8시가 되면 교실 문을 여는 내 뒤를 따라 들어오는 꼬마들이 벌써 여럿입니다. 우리 학교는 아침 독서 시간을 '사제독서'의 시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1년 중 가장 바쁜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 곁에서 책을 펴놓고 독서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바쁜 공문서를 처리하거나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마저도 포기하고 용기를 내어 책을 폈습니다. 내가 일을 하며 조용히 책을 보자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잘 따르지 않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생각다 못해 오늘부터는 아예 다른 일은 다 던지고 아이들처럼 책을 폈습니다.

발소리를 줄여가며 등교하는 아이들과 조용히 눈인사를 하고 책을 꺼내고 읽을 때까지 곁에 가서 책을 읽고 서 있는 나를 보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목소리를 줄입니다. 40분 가까이 책을 보는 동안 몇몇 아이들은 힘들어서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화장실 타령을 하지만 용납이 안 된다는 것을 눈치로 압니다.

아직 글씨를 다 깨치지 못한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구경하지만 그래도 책 구경에 그치는 한이 있어도 안 보는 것보다는 나을 듯 싶었습니다. 19명 중에 18명이 일찍 와서 책을 읽었고 15명이 진지하게 몰입하는 장면이 참 신기했습니다. 말로 하면 반항하는 아이도 몸으로 보여주면 말없이 따라 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혹시라도 발소리를 내거나 책을 읽지 않는 아이에게는, 곁에 가서 작은 목소리로
"00야, 선생님이 이 책을 읽고 싶은데 네 목소리가 커서 방해가 되거든? 아마 다른 친구도 그럴 거야. 조금만 조용히 해 주겠니?" 하고 타이르면 미안한 표정을 짓습니다. 나는 아침마다 8시에 출근을 해서 아이들처럼 40분 독서하는 시간을 꼭 지키겠다고 자신과 다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사제독서 덕분에 차분한 분위기가 수업과 연결되어서 아이들의 집중도도 매우 높았습니다. 단 몇 초를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떠들고 장난치는 1학년 아이들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독서하는 모습에 신기해하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도 책을 보세요? 책 이름이 뭐예요?"
"응, 선생님은 책을 참 좋아하거든? 책 보는 시간이 참 행복하단다."

가끔 학부모님께서 자신의 아이에게 책 보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상담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나는,

"아주 간단한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답니다."
"뭔데요? "
"오늘부터 어머니께서 텔레비전을 끄시고 거실에 상을 펴놓고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그 방법보다 더 좋은 비결은 없답니다. 엄마는 텔레비전 보면서 아이에게는 공부해라, 독서해라 하는 것은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으니까요."

아침독서 덕분이었는지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차분한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 독서 시간 뒤에는,
"오늘은 우리 1학년 친구들이 책을 잘 읽어서 별점도 주고 찰떡도 하나씩 입에 넣어줄 거야.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요. 불량식품을 먹으면 이가 썩을 텐데 떡은 배도 고프지 않고 몸에 좋아요."
"와, 선생님이 우리 엄마 같다!" "떡이 참 맛있어요!"

제비 새끼처럼 입을 쫙 벌리고 떡을 기다리는 요녀석들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스트레스로 눈이 충혈되곤 하지만 이렇게 예쁜 순간들이 나를 다시 살게 합니다. 퇴근 후에 집에 오자마자 남기는 교단일기를 쓰며 반성과 웃음이 교차되곤 합니다. 교실에만 있게 해서 미안해 데리고 나가서 달리기를 시켰더니 덥다며 웃통을 벗고는 내복바람으로 맨살을 드러낸 원빈이, 영민이, 승현이, 영찬이 모습에 눈을 가리고 깔깔대던 여자 아이들의 즐거운 표정이 떠오릅니다. 더 뛰게 하면 바지까지 벗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교실로 몰고오면서도 실컷 웃었답니다.

녀석들의 앙증맞은 모습은 요즈음 화단가에 지천으로 피어난 봄까치꽃처럼 귀여웠습니다. 가까이 가서 봐야 꽃이 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봄까치꽃은 꼼지락 장난이 심한 1학년 아이들을 닮았으니까요.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제나름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마음을 키우는 사제동행 독서시간을 위해서는 아이들보다 나의 결심과 용기가 더 필요함을 아이들에게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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