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누구나 별명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이 별명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별명은 주위사람들이 그 사람의 생김새나 행동상의 특성을 보고 부여한 애칭이다. 월드컵 때 이름을 날린 김남일을 우리는 '진공청소기'라 부른다. 미드필드로 넘어온 상대방 공을 깨끗이 쓸어버려 붙은 별명이다. 이런 별명은 대부분 악의가 없다. 그저 재미 삼아 친근하게 부르려고 붙인 별칭이기 때문이다.
악의가 없는 별명 몇 개만 더 들어보자.
나의 학창 시절, 별명이 '인민군'인 선생님이 계셨다. 얼굴이 희멀건 하고 행동이 엉성하셨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이 처음 교실에 들어오셨을 때 한 친구가 무의식적으로 "인민군 같은데."라고 말한 뒤부터 선생님은 학교에서 '인민군'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해 지셨다. 선생님도 그닥 당신의 별명에 별 다른 불만은 없는 눈치셨다.
우리 담임 선생님의 별명은 '느끼맨'이었다. 성격도 좋으시고 잘 생기셨는데 꼭 소풍 때 노래를 부르실 때면 너무 감정을 느끼하게 넣고 부르셔서 듣는 사람까지 민망하게 하셔서 붙은 별명이다. 또 국사 선생님의 별명은 '오파운드'였는데 키가 작달막한데다 허리춤에 큼지막한 열쇠꾸러미를 차고 다니셔서 그런 애칭이 붙고 말았다. 한번은 교단에서 뒤돌아 서시다가 바짓가랑이가 슬리퍼에 밟혀 넘어진 적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담임 선생님의 본명은 모른 채 별명만 알고 졸업한 경우도 있었다. 믿지 못하겠지만 이건 내가 직접 목격한 실화이다.
몇 년 전 한 아이가 대입 원서를 쓰게 되었다. 원서에 담임 선생님 성함을 써넣는 난(欄)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거기에 버젓이 '야옹이'라고 써넣고 말았다. 3년 내내 담임 선생님의 별명만 부르다 보니 그만 선생님 본명이 정말 '야옹이'인줄 알았던 것이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주객전도란 바로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선생님들만 별명이 있는 게 아니다.
리포터가 몇 년 전 담임을 맡고 있는 아이 중에 '말갈족'이란 녀석이 있었다. 산적처럼 몸집이 크고 온몸에 털이 무성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이정현이란 학생은 얼굴이 여자같이 곱고 예쁘장해서 '유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우리 반 최고 헤비급이었던 김 모군은 몸무게가 무려 120Kg을 능가하기 때문에 '산적'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상은 주로 그 사람의 생김새를 가지고 별명을 붙인 경우이다.
다음은 사람의 성격이나 기이한 행동 때문에 별명이 붙은 예이다.
우리 반 아이 중에 '물먹는 하마'란 아이가 있다. 이 학생은 쉬는 시간마다 물을 많이 마시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우리 반 어떤 학생은 이름보다는 '찜'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려진다. 친구들에게 그렇게 짜증을 잘 낸다나? '갱스터'라 불리는 아이는 평소 행동이 거칠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개념 없는 연예인'도 있다. 생각 없이 말을 내뱉고 스스로 잘 난 척 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무릎을 칠 정도로 참말 잘 지은 별명도 있다.
리포터가 근무하는 학교에 별명이 '자라'인 선생님이 계시다. 목이 좀 짧아서 아이들이 붙인 별명이다.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정말 자라란 별명에 걸맞게 성격도 여유 있고 넉넉하시다. 아이들이 "자라 선생님"하고 부르면 선생님은 특유의 너털웃음을 허허 웃으시며 "에끼 이놈들"하시곤 그만이다.
별명은 친구나 동료 간의 우정의 표시이다. 별명을 부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과 격의가 없고 친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별명이란,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부담이 없어야 한다. 만약 듣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런 별명은 절대로 부르지도 짓지도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남의 신체적 약점이나 불구를 가지고 별명을 지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런 별명은 그 사람의 일생을 크게 바꿔 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리포터인 필자에게 지어준 별명은 '김뻥'이다. 수업 시간에 과장법을 많이 써서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나 또한 내 별명에 큰 불만은 없다. 따라서 죽는 날까지 이 별명을 고이 간직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