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리학교에 장학금으로 3억 500만원을 기부한 분이 있었다. 당신의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돈을 선뜻 기부한 것이다. 가족의 전적인 동의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학교에서는 이분의 숭고한 뜻을 기려 '박재중장학재단'을 설립하고 그 수익금으로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수백억원을 사랑의 리퀘스트에 기부한 사람도 있었다. 또 사회 일각에선 유산 안 물려주기 운동과 재산 1% 기부하기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다. 비록 그 확산 속도는 더디지만 다행히 우리 사회에 조그만 기부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추세로 나아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다.
본격적인 기부 문화의 시작은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19년 당시 6,000억 원에 이르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 돈으로 미국 각지에 3,000여 개의 도서관을 건립했으며, 이것은 곧바로 미국 사회의 지적 인프라가 되었다.
생전에 그가 말하길,
"재산을 물려주면 자식들의 재능과 노력을 해치게 되며, 죽을 때 돈을 남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기부 문화가 정착됐는지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아마도 이 같은 기부 문화가 오늘의 초강대국 미국을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카네기 같은 훌륭한 분이 있었다. 지금은 제약업으로 유명한 '유한양행'의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유언을 통해 개인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상속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했다. 기업이 단순히 돈버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기업윤리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평생 젓갈 장사를 해서 모은 억대의 재산을 한서대학교에 기부한 유양선 할머니, 김밥 장사로 어렵게 모은 수천만 원을 불우이웃을 위해 쾌척한 분들이야말로 공동체 정신을 훌륭히 실천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재산가들은 당대에 모은 재산을 대대손손 대물림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탈세와 위법까지 저지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아주 가끔씩은 기업주들이 기부금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것은 기업 홍보 차원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진정한 기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역사를 상고해 보건대, 우리에게는 향약, 품앗이, 두레처럼 기부 정신과 그 맥을 같이하는 훌륭한 공동체 문화가 있었다. 오늘날처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일수록 이런 전통 문화를 발굴하여 계승시켜야 한다. 한편으론 세법 개정을 통해 원천적으로 재산 상속을 견제하여 기부문화를 유도한다면 우리나라도 선진국 못지 않은 기부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부 문화가 정착된다면 빈곤한 학교 재정에도 좀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