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울타리 안에 중·고등학교가 함께 위치해 있다보니 가끔 이 두 학교의 학생들을 비교할 때가 있다. 외양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교복 색깔이나 덩치가 아니더라도 움직임이나 얼굴 표정만 봐도 금방 누가 중학생이고 누가 고등학생인지 가려내는 안목이 저절로 생긴다.
야생노루처럼 움직임이 팔팔하고 표정에 생기가 도는 것은 중학생이요, 폐계(廢鷄)처럼 얼굴이 꺼칠하며 몸에 활력이 없는 것은 틀림없는 고등학생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리포터인 내 생각엔 우선 잠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중학생일 적에는 학습의 양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야간 자율학습이 없었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고등학교에 올라오자 거의 배로 늘어난 학습량과 연일 계속되는 야간 자율학습으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수면 부족을 느끼는 것이다. 무조건 하면 된다는 식의 4당5락 논리가 아직도 학교 현장에선 유효한 셈이다.
청춘 시절 밤을 낮 삼아 면학에 정진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흐릿한 등잔불 밑에서 잦아드는 심지를 북돋으며 매일 밤 그을음으로 콧구멍이 새까매질 때까지 공부하던 추억이 리포터에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공부하다 피곤하면 잠을 잤고, 자다 깨어나면 다시 정신이 맑아져 무릎걸음으로 걸어가 앉은뱅이 책상을 끌어당기던 자발적인 학습이었다. 그렇기에 매일밤 공부해도 피곤한 줄을 몰랐고 학습 능률도 올랐던 것이다.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지금의 아이들은 애초에 선택의 여지란 없다. 오직 입시만을 위해 한길로 매진할 뿐이다. 곁눈질도, 딴 생각도 할 겨를이 없다. 수험생의 천적 격인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만 한다.
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장좌불와'(長坐不臥)니 '등하불명'(燈下不明)이니 하는 우스개 말들도 모두 이런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수업시간에 눕지 않고 꼿꼿하게 앉은 채로 자는 것이 장좌불와요, 교탁 바로 아래 자리에서 교사의 눈을 피해 감쪽같이 쪽잠을 자는 것이 등하불명이다. 학생들 사이에선 이러한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초코파이란 뇌물(?)까지 동원되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물리치기 힘든 것이 수마(睡魔)이며 가장 무거운 것은 눈꺼풀이라고 한다. 옛 사람들도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 흔적이 있다. '어제 간밤 오던 잠이 오늘 아침 잠이 오네. 잠아 잠아 무삼 잠고 가라 가라 멀리 가라'란 '잠노래'가 바로 그것이다. 하루의 고된 노동을 끝마친 뒤에 다시 한밤중까지 길쌈을 해야 하는 서민들의 삶이란 오죽이나 피곤했겠는가. 그래서 고문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고문이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란다. 아무리 독한 사람도 사흘 정도만 재우지 않으면 철옹성 같던 의지가 맥없이 꺾인다고 한다.
지금 우리 고등학생들은 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몸이 피로하고 피로는 만병의 근원이 된다. 반대로 웬만한 병 정도는 하룻밤 숙면으로 말끔히 치료가 된다고 하니, 잠이 보약이라는 옛말이 맞는 셈이다.
따라서 성장기의 청소년들은 하루 일곱시간 정도는 자야 한다. 그래야 얼굴에 생기가 돌고 머리가 맑아져 학습의 능률도 오른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도 중국처럼 점심 식사 후 단 몇 십 분만이라도 공식적인 낮잠 시간을 주자. 그래서 아이들의 얼굴에 생기발랄한 웃음을 되찾아주자.
입시 지옥에 시달려 청춘의 봄을 빼앗긴 아이들에게, 다시 잠마저 빼앗아 간다면 이는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