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10일 <교수신문>에 ‘교수와 잡상인’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수의 신분으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을 방문할 때마다 교무실 앞에 써 붙여 놓은 ‘교수와 잡상인 출입금지’ 문구는 대학에 첫발을 딛고 부푼 가슴에 연구에 몰두할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을 돌아다니며 신입생을 모집해야 하는 처량한 지방 대학의 현실에 교수라는 신분은 한갓 껍데기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는 내용이다.
고등학교 교사는 어떤가? 존경받는 스승이 아니라 직업 교사의 신분으로 추락하고 있다. 교수가 잡상인에 비한다면, 고등학교 교사는 밤늦도록 학생들을 지도하는 중노동자에 지나지 않다.
교수와 교사 평가는 입학과 진학에 달려 있어
우수한 교수는 요즘 뛰어난 강의를 하여 학생들에게 존경받기보다는 지방대의 경우는 많은 학생을 본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세일 외교를 잘하는 교수가 우수한 교수로 평가받고, 고등학교 교사는 우수한 대학에 진학을 잘 시키는 것이 우수한 교사, 능력있는 교사로 평가받는다. 교사가 중노동에 시달려 가면서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쓰러져 가도 그 누구도 이에 연연하지 않고 학생들을 밤늦도록 자율학습이라는 미명하에 밤을 밝히는 등불 아래에서 책상을 지켜야 하는 것이 엄연한 고등학교 현실이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이나 부장이 되면 해를 보고 집에 귀가한다는 것은 거의 어려운 실정이다. 토요일도 오후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교무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시간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찾아드는 지방 대학교의 교수들. 그것도 ‘하루가 멀다’하고 시골 학교까지 방문을 하면서 본교에 많은 학생을 보내 달라고 호소하는 열정이 오히려 안쓰럽기까지 하다. 수 년을 공부하여 얻은 학위와 그에 따라 얻기 어려운 대학 교수의 직위. 딸깍발이 정신은 헌 신짝같이 사라지고 고등학교 교실을 찾아다니면서 구걸해야 하는 초라한 신세를 누가 만들어 냈는가?
교수로 채용돼 학생들을 끌어오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매년 연말이면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소화해 낼 것인가? 거기에 학생들로부터 대학 강의 평가까지 받아야 하는 교수들의 이중 신세는 고등하교 교사들이 진학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과 후 학교 운영에 몰두해야 하는 신세와 학부모로부터 받는 교사들의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 그리고 강한 지도에 불만을 표하는 학생들, 우수 대학에 진학시키고자 하는 관리자들의 관심도 등등은 일선 교사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대학은 학점 교환제를 고등학교는 전인교육을
대학을 경쟁체제로 가는 유일한 길은 대학간의 학점 교환제를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어느 대학을 가든 대학이라는 간판보다는 대학의 학점을 중히 여기는 시대로 이끌어 간다면 굳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만 몰려들지 않을 것이고, 대학 교수도 세일 외교보다는 교과 내용연구에 더 몰두할 것이다. 반면 고등학교 현장에서도 학생들을 서울의 명문 대학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학교로 굳이 보낼 필요가 없다. 공존공생의 길을 찾아 가야만 현재 지방 대학 교수들이 고등학교 교무실을 들락거리는 우리 사회의 슬픈 파노라마의 한 장면은 없어질 것이다.
또 학생들을 올바르게 교육시켜야 할 고교 현장은 대학을 보내는 데만 중점을 두고 있어 전인교육은 등한시한 채, 새로 등장한 맞춤식 교육에 교육과정은 학생 지도에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