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터가 이번 중간고사 시험 감독을 했던 교실 정면에 걸려 있던 급훈이다. 결연함을 넘어 비장함까지 느껴져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져 왔다. 학교 시험인데도 교실 안은 숨소리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이 아름다운 5월에 교실을 가득 채우는 소리는 오직 아이들의 쿨럭 거리는 기침 소리와 사각이는 볼펜 소리뿐이었다. 마치 병원 대합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처럼 기침소리는 심했다.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연신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으며 시험지를 노려보고 있는 아이들을 50분 내내 지켜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매스컴에선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와 입시 제도의 문제점을 성토하면서 우리 교육의 미래를 무지갯빛으로 제시하지만 현장에 있는 아이들에겐 그저 허망한 구두선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의 선구자가 될 수 있을까? 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주어진 여건 하에서 기계적으로 입시에 매달리는 일뿐이다.
이윽고 시험 종료를 알리는 차임벨이 울렸다. 모두가 내 자식 같은 녀석들이라 안쓰러움을 안고 나는 교실을 나섰다. 그리곤 오후에 시험 감독이 없기에 마침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도서관에서 한 권 빌렸다. 김덕년 선생님의 '학교야, 훨훨 날자꾸나'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고등학교에서 거의 20여 년 간 국어를 가르치고 계신 김덕년 선생님의 생생한 학교 현장 이야기로 마치 복도에 서서 교실 안 풍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랑 받는 선생님 DN짱과 사랑 받는 아이들 DNA(DN'Angels)가 1년 동안 엮어 가는 에피소드가 주된 내용이었는데 고등학교 풍경이라기 보단 서로 감싸안고 한 길을 가는 여행자를 연상시킬 정도로 내용이 아기자기했다.
담임선생님은 그 무리의 캡틴으로 보이지 않는 파워를 행사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학급을 경영해 갔다. 반 아이들을 진솔이(진실한 소나무란 뜻)라 부르며 대화 공책을 통해 수시로 개별 상담을 하고, 모둠조직을 만들어 학교 행사 및 교과 시간에도 활용하였고, 대통령 선거를 연상케 하는 학급 반장 선거와 상추 심기, 별 붙이기, 학급 소풍 대신 두레마을로 봉사활동 다녀오기, 학교 운동장에서 하는 뒤뜰 야영, 학급문집 제작. 그리고 학급잔치 등이 창의적 교육 과정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일부 교사들은 각종 잡무와 붕괴되는 공교육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솔선해서 아이들을 위한 창의적인 교육 활동은 하지 않으려는 게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김덕년 선생님의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교실은 읽는 내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일단 교실 안에서 선생님은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 리더십은 오직 선생님의 열정과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다고 책은 암시하고 있었다. 교사의 태도에 따라 아이들은 수없이 달라지기 때문에 교사는 항상 일관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역설한다. 담임교사야말로 교직의 "꽃"이라고 말하는 필자는 교사의 손짓 하나, 말 하나에도 따뜻한 교육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했어도 현실은 아직도 요지부동이다. 그렇다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크게 변할 것 같지도 않다. 여전히 아이들은 대학입시라는 명제 앞에서 주눅이 들 것이고 선생님, 아이들, 학부모들은 터져 나오는 독한 기침을 참으며 또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감히 교육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박노해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요, 사람만이 살길'이라고 외쳤듯이, 나 또한 우리 교사들만이 이 시대 아이들의 희망이요 우리 교육을 살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한 사람의 영웅으로 역사가 달라질 수 있듯, 교육도 이런 헌신적인 선생님들에 의해 분명 바뀔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김덕년 선생님의 교육 철학에 열렬한 지지를 보낼 것이다.
어서 빨리 학교가, 아니 우리 아이들이 훨훨 나는 그런 교육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