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수업’이란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사회ㆍ정치적으로 중대한 의미가 있는 주제나 사건이 있을 때 필요에 따라 별도로 실시하는 수업을 말한다. 교육부에서는 학교의 교육과정위원회나 운영위원회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학교장의 사전승인을 거쳐 학년·교과협의회를 통해 교수학습안을 작성해 계기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7차교육과정 상에도 재량활동 및 특별활동을 통하여 다양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학교장에게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계기수업 자체는 문제되지 않으며 교육적이라면 오히려 활용을 적극 권장할 일이다. 현재 각종 국경일과 기념일이면 조․종례 시간과 수업시간, 필요하면 가정통신이나 별도의 시간을 확보하여 다양한 계기교육을 하고 있다. 물론 그때마다 학교장의 승인을 받은 후에다.
정치․사회적 특정 사안에 대해 교사가 자신의 수업이나 교육활동에서 나름의 소신을 피력할 수는 있다고 본다. 헌법 제31조 제4항의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보장 외에도 교육기본법 제6조 제1항에는 ‘교육은 교육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어떠한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의 전파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교육의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다.
즉, 계기수업 자체가 교육과정에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교육 중립성을 훼손하고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당연히 지양해야 한다. 이는 교사 입장에서 보면 권한남용이자 교육을 빙자한 사상학습이며,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일방적인 방침을 주입시키는 명백한 ‘교육폭력’이다.
교육의 본질은 학생들이 희망을 갖고 세상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며 장차 사회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리분별 능력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자칫 균형 감각을 상실한 한쪽의 주장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 'FTA 협상' 문제도 그렇다. 이번 전교조 주관의 FTA 관련 계기수업에는 FTA 반대 파업 투쟁에 나선 단체와 영화배우 등이 동원됐다. 학생들에게 ‘교육적’ 차원에서의 ‘객관적’인 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진정 학생을 위한 '교육적' 계기수업이 되려면 'FTA 협정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학생들이 깊이 생각해 보는데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계기교육은 학생들의 다양한 판단 능력을 키워주는 범위 내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그것도 가능하면 교사들에 의해서다. 사회 현안이 있을 때마다 계기수업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번처럼 유명 연예인 등 외부 인사들의 힘을 의존하는 모습을 학부모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이는 국민들에게 교직에 대한 편향되고 왜곡된 인식만 심어주게 될 것이며 ‘계기수업’ 그 본래의 취지나 목적을 퇴색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교육적' 차원을 벗어난 무분별한 계기수업은 교육의 본질 면이나 교육과정 운영상으로 봐도 주객전도(主客顚倒)요 본말전도(本末顚倒)인 것이다. 지금의 정치인은 국민이 뽑아줄 때의 생각이나 마음은 까맣게 잊은 채 국민이 올바르게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일은 제쳐두고 오직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서 정치공방만 하는 본말전도 행태와 무엇이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