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의 첫 토요휴무가 있는 일요일 점심시간은 저에겐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은 행복을 읽으며, 느끼며, 찾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아들이 끓여주는 라면과 두 줄의 김밥이 놓인 밥상을 받았는데 그 시간은 전국 노래자랑이 시작되어 가수 하춘화가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저가 봐도 꼴불견이다 싶을 정도의 자유스런 복장으로 책을 밥상머리에 놓고서 ‘포도주 반 병의 행복’을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훔쳐보며 라면과 김밥을 먹는 이 순간은 저에게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제는 그 동안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로 인해 슬픔에 잠긴 한 여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 네 분 선생님이 문상을 갔습니다. 저가 운전을 하고 갔더라면 한 세 시간은 걸릴 듯한 먼 거리였습니다. 친목회 총무를 맡으신 한 부장 선생님의 처가동네라 새로 뽑은 신형 소나타를 타고 신나게 달렸습니다.
상가에 가보니 선생님께서는 평소에 얼굴이 어두웠었는데 이날은 얼굴 표정이 밝아보였습니다. 거기에다 우리가 멀리서 왔다고 귀한 회까지 대접하였습니다. 많은 상가를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회를 대접받기는 처음입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울면서 하는 전화를 받을 때는 가슴이 매우 아팠었는데 상가에서는 그 동안의 고생도 잊고 밝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어 마음이 놓이기도 했으며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다 신형 소나타를 타보았으니 저에게는 작은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오는 길에 언양에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소고기 불고기와 소면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 작은 기쁨이었고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포도주 반 병의 행복’을 읽어보니 어떤 사람이 산 넘고 물 건너 정신없이 행복을 찾아 헤매다가 찾지 못하고 지쳐서 오두막 자기 집에 돌아와 울타리 밑에서 돋아나는 새싹을 보고는 행복을 찾았다고 하네요.
포도주 한 병이 아닌 반 병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자연의 소리에서, 울타리 밑의 새싹에서, 자기의 일에 열중하면서 행복을 얻었다는 글을 읽고서 우리들도 우리의 ‘직장’의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일과 나타나는 현상과 자연 속에서 무엇이든 보고, 듣고, 느끼면서 언제 어디서나 행복이 내 곁에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모습들- 준비된 수업, 끊임없는 상담과 생활지도, 이어지는 자습지도, 사제지간 청소, 노심초사 건강관리, 정성이 담긴 식사준비, 지속적인 행정지원 등-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우리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서 작은 즐거움과 행복을 찾고 누리며 생활하고 있을 거라고요.
한 미국 대통령이 허허벌판 멀리 농장 한가운데서 홀로 일하고 있는 농부를 보고는 미국의 건설자가 바로 저기 있다고 하면서 그 쪽을 향하여 절을 하고 지나갔다고 하는데 21세기의 참다운 교육자는 우리학교에 다 계시며 모두 존경을 받아야 할 분이며 아마 이분들도 자기가 맡은 일에 땀 흘려 열중하면서 행복하다는 걸 느끼면서 행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생님들은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멀리서 찾으려고 하면 힘듭니다. 눈뜬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에서 찾아야 합니다. 교실 속에서 학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학생과의 1대 1의 만남에서 찾아야 합니다. 학교 안에 있는 쾌적한 환경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함께 몸담고 있는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소한 나의 생각에서 찾아야 합니다. 나의 움직임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 불행은 우리 앞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교육은 행복입니다. 학생생활이 불행하면 안 됩니다. 불행 중 다행이 아니라 학생생활이 내내 행복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학교는 일찍 오고 싶게 되고, 오래 머물고 싶게 되며, 행복의 꿈을 꾸는 학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