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3 교실은 어느 학교나 거의 마찬가지겠지만 수시 1차를 앞두고 담임은 서서히 학생들과 바쁜 시간을 보내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수시 1차가 마지막으로 있는 해이기에 각 급 담임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재수생이 다른 해에 비해 많다는 소문이 나돌고 상위 학생들이 서울권을 노리는 비중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진학 정보지의 소식 때문에 고3 교실은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이지만 삼복더위를 방불케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이라면 그 학교에서는 진학담당 경험이 많은 교사를 배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3학년 담당 교사로서 겪는 고달픔 때문에 선 듯 3학년을 담당하지 않으려는 교사가 늘고 있는 것도 부정하지 못한다. 만능이어야 하는 고3 담임, 대입시 경험도 많아야 하고 리더쉽도 뛰어나야 하는 그야말로 유비쿼터스와 같은 체제를 갖추어야 하는 전천후 교사가 바로 고3 담임이 아닐까?
고3 담임은 체력이 학생의 지도를 좌우한다
고3 학생이 되면 체격도 정신연령도 성숙의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기에 이들에게 꾸지람보다는 타이르는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의 거칠은 목소리에 엄숙하게 대답하기보다는 역반응을 일으키려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들 청소년기에 찾을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또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 장기전은 교사의 체력을 필요로 한다. 아침 일찍 타 부서보다 빨리 와야 하는 정신적 긴장감이 1년간 지속되어야 하고, 매월 보는 모의학력고사 성적이 정식적인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키는 역할도 한다. 이처럼 고3 담임은 학생의 일생을 좌우하게 될지도 모르는 진학지도 1년간의 기간은 이들 개인에게는 피를 말리는 순간순간의 긴장을 있게 한다. 사람들의 유형이 다양하지만, 그래도 고3 담임으로서의 업무를 제대로 하려면 아니 한 학생의 일생을 좌우하는 길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투자하는 헌신적인 봉사는 그 어느 것에 비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교직을 성직이다 봉사직이다 하는 시대의 닉네임은 이제 우리 시대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각자 생각하는 바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직은 그래도 그 본연의 모습은 퇴식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중노동으로 고통스러운 역경을 겪는 일이 있을지라도 자라나는 세대를 길러내 이 사회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 인간을 교육시키는 막중한 대사명을 띤 것이라면 오늘의 호된 채찍이 어찌 일시적인 아픔에 비할 것인가? 잘못 가르쳐 후대의 이 사회를 다른 길로 이끌어 가는 인물들로 줄을 선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비난의 강도가 아무리 높아도 교직은 그 본연의 자세에서 물러나지 말고 더욱 더 분발하여 다방면에 능통한 유비쿼터스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교사의 가치는 시대의 등가물(等價物)
교사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었다고 아우성치는 현실에서 그 누구도 그 가치 하락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시대에 따라 정비례되어 나타나는 가치관의 변화에 그 정답이 있다. 선생이 부족해 그 희소가치가 있었을 때 어느 누가 교사를 존경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는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당대의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인간사의 일이다. 교사가 교사의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는 그 시대의 등가물이 유비쿼터스와 같은 존재로 그 진가를 발휘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