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5월이 지나갔다. 올해 스승의 날에는 대부분의 학교가 ‘재량휴업일’로 지정하여 교사와 학생이 모두 떠나 학교 스스로 문을 닫았다. 스승과 교직사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과 불신’을 넘어 상호이해의 단계로 나아가보자는 고심의 산물이었다. ‘경찰의 날’에 경찰을,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을 생각하듯이 ‘스승의 날’에도 교사들에 대해 일년에 한번쯤만이라도 왜곡된 시각이 아닌 호의적인 관심을 가져보는 날 정도로만 생각해도 족하겠다는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촌지 문제가 사라지기는커녕 언론에서는 오히려 이날이 마치 ‘선물이나 촌지 따위를 주고받는 날이었음’으로 더 왜곡되게 편향된 시각으로 보도함으로써 교직사회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잖아도 해마다 5월이면 때 맞춰 붕괴된 공교육, 촌지나 바라고 성추행이나 일삼는 교사 등 해묵은 이야기를 들춰내 교직에 대한 질타를 빼놓지 않을 터였는데 스스로 학교 문까지 닫았으니 ‘오죽했으면 학교 문을 닫겠느냐’는 교육현실에 대한 암울함까지 비춰져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많은 날로 두고두고 기록될 것이다.
유네스코가 1994년 ‘세계 스승의 날’로 선포한 10월 5일을 현재 100여 개국이 기념하고 있건만 스승의 날에 정작 사제가 아예 만나지도 못하게 해 놓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 김영숙 의원이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기자는 안을 국회에 제출한데 이어 서울시교육청이 스승의 날 변경에 관한 TF팀을 구성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스승의 날을 교원단체나 정부, 국회도 아닌 교육청에서 빗나간 세태에 동조하는 것이 어이없고 주제 넘는 얘기일뿐더러 그 논의 자체가 불쾌하다.
터놓고 얘기해 보자. 기원을 따져보면 스승의 날은 스승들이 “나를 기념하라!” 하며 만든 게 아니다. 뜻있는 몇몇 제자들이 스승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소박하게 시작한 날이건만 오늘날 많은 교사들이 이 날에는 오히려 즐거움보다는 착잡함과 압박감을 느끼며 현실의 아픔으로 무겁게 침묵할 수밖에 없는 날이 되었다니 이런 스승의 날이라면 날짜나 명칭을 변경하기보다는 차라리 폐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사제간의 정을 주고받으며 스승의 은혜를 기리자는 데 날짜와 명칭을 따로 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어차피 본질이 변질된 기념일을 겨울방학인 12월 말이나 2월 종업식 전으로 바꾼다고 해서 사회 전반에 만연된 불신감이 사라질 리도 없을뿐더러 여론 또한 말이 많을 것이 뻔하다. 더구나 ‘교사의 날’이 ‘스승의 날’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스승의 날’이면 편향된 시각에 의하여 좋은 교사, 훌륭한 스승은 잘 알려지지 않고 일부의 문제 교사만 부각되어 교직사회 전체를 왜곡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일부 정치권이나 여론에 의하여 스승을 낯 뜨겁게 하고 욕보이는 날이 되었다면 차라리 없애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명칭을 바꾸는 것도, 날짜를 옮기는 것도 다 부질없다. 생각을 바꾸면 간단하다. 스승의 날이 없어진다고 슬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속이 시원한 사람들이 있다면 고마운 일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제 이런 일로 맞대응하는 것도 지쳤다. 더 이상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