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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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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비를 기다리는 아이들


대개의 사람들은 비를 싫어한다. 궂은 날이면 어김없이 삭신이 쑤시는 연령대의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눅진한 습기가 사람의 기분을 가라앉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에서도 비는 주로 앞으로 일어날 불행한 일들을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 구실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현진건의 대표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보더라도 소설 첫머리에서부터 비가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처럼 비는 앞으로 김 첨지에게 닥칠 불행한 사건과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상황적 배경이 된다.

비는 소설뿐만 아니라 시에서도 부정적이다.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혼자 있음 우울하다.
평소대로 '반돌이'라도 뛰어 놀면 좋겠다.
비가 와서 밖에도 못나가니
내 마음도 답답하고
쏴아아 하는 빗물 소리에
'반돌이'도 나도 그만
빗물에 잠겨버린다.

이처럼 비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주로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도 비를 좋아한다. 서편 하늘에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비를 재촉하는 습한 남동풍이라도 불라치면 아이들은 아침부터 기쁜 기색으로 술렁인다. 그러다 드디어 오후가 되고 꾸물꾸물하던 날씨가 무르익어 세찬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지는 날이면 교정은 아이들의 환호성으로 떠나갈 지경이 된다. 마치 독일 월드컵 경기장을 그대로 교정에 옮겨 놓은 듯 교실은 뜨거운 함성에 휩싸이는 것이다.

맑은 날을 좋아하고 흐린 날을 싫어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인지상정일 터인데 어째서 아이들은 칠 년 대한의 가뭄도 아닌데 이토록 간절히 비를 기다리고 빗방울 긋는 소리에 열광하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이런 특이한 습성이 생긴 것은 다름 아닌 야간 자율 학습(이후 '야자'로 칭함) 때문이다. 주변의 교육 여건이 완비되지 못한 시골이나 지방 중소 도시 학교들에서 고육책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야자'이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 마땅히 갈 만한 학원도 없고 또 공부방이나 도서관 시설이 미비하다 보니 교실에 남아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이 현재로선 성적을 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실 '자율'이란 수식어가 붙어있지만 '타율'이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인내력과 판단력이 아직 부족한 아이들에게 자율을 주면 자칫 방종이 되기 때문이다. 과연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매일같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네 시간 이상을 자의적으로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공부에 취미가 있는 학생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겐 하루도 쉬지 않고 강행되는 야자는 무척 고통스러운 일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니 자율로 야자를 하게 하면 고3 이외에는 참여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계속되는 야자로 피로가 누적되면서 아이들은 서서히 지쳐가기 마련이다. 전무결석, 절대정숙, 목표설정, 정신집중의 획일적인 구호로 숨통을 죄어오는 와중에도 한줄기 빛과 같은 비상구가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비 오는 날이다. 비가 오면 야자를 안 하는데 이는 통학하는 학생들의 안전사고와 불편을 염려해서 내려지는 불가피한 조치들이다.

따라서 비 오는 날 저녁에는 모처럼 뜨뜻한 아랫목에 누워 엄마가 부쳐주는 빈대떡이라도 먹으며 공부에 지친 심신을 쉬게 할 수 있고, 또 평소 좋아하던 컴퓨터게임도 만끽 할 수 있으니 어찌 아이들이 환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학교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야자를 안 하자니 무한 경쟁시대에 학력 저하가 염려되고, 또 강행하자니 스트레스와 발육부진 등의 여러 가지 부작용이 뒤따르고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유곡에 처해있는 것이 작금의 시골 인문계 고등학교들의 현실이다. 뭔가 '야자'보다 특별히 효과 있는 학습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이런 딜레마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보니 6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두 눈이 멀 정도로 청명한 날씨가 되면 오히려 아이들의 한숨소리는 높아만 가니 가히 시대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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