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문열의 중편소설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승만 독재 정권의 허구를 파헤친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엄석대의 일그러진 모습은 우리 사회의 영웅들의 일그러진 얼굴이었고, 황우석 박사의 일그러진 영웅 심리는 국민들의 마음에 더 이상 희망의 메시아는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도덕적 낙마는 한국 교육에 장밋빛 희망을 더 이상 심어 주지 못하고 오히려 논문의 표절과 같은 것도 관행으로 치부해 버리는 우리 학계의 도덕적 양심은 공사판의 안전 불감증과 같은 것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럴 수 있지”식 사고의 무력감
최근 모 TV 방송국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 “봉숭아 학당”에서 한 코미디언이 “그까이껏 대충”이란 사투리 섞어 사용한 용어가 대중의 인기를 사로잡은 적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 대중들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잠재력이 관행처럼 내재되어 있기에 그토록 대충이란 용어가 그렇게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래도 우리 사회의 도덕적 양심이 살아 있다고 자부하고 있고, 살아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순수하게 전할 수 있는 배움의 전당조차도 이번 교육부총리 사건을 계기로 썩고 부조리한 학계의 관행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학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바뀌어 지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학교 사회의 부조리가 온통 사회의 냉대를 받고 있는 가운데 관행처럼 되어 버린 학교 사회의 인습들을 개혁해 보고자 시도한 교육부의 정책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허장성세에 지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도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한 사람의 본보기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에 국회청문회에서 한 사람의 인품을 검증해 보자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도 한 사회를 바탕으로 자신의 과정을 걸어가야 할 정도가 인간으로서 거처야 할 관행이라면 관행이다. 정실주의가 우리 사회의 유교주의 사회에서 지연, 학연, 혈연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래도 그 속에서 정도를 걸어가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국회청문회에서 논문 표절과 같은 것은 학계의 관행이라는 한마디가 시청자들의 마음에는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교육부 수장으로서 과연 그렇게 말해야 할까? 잘못된 관행이었으니 그것은 앞으로 고쳐야 할 우리 사회의 관행이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우리 사회의 인습으로 굳어져 있는 정치인의 비자금 조성 관행, 교육계의 무사안일주의 관행, 학계의 표절 관행, 법조계의 전관 우대 관행 등등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관행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개혁은 그 허점을 파고들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우리 몸에 병원균을 퇴치하려는 저항력이 부족하게 되면 병으로 자리잡게 되지만, 저항력이 강하면 면역성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처럼 관행이 계속되면 될수록 그것은 인습으로 또는 관습으로 대중들의 마음에 자리잡게 되어 마치 통과의례란 용어로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관행은 개혁으로 변화되어야
관행은 쉽게 바뀔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기에 문화와 문화의 접촉을 통해서,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정권하에서 5번째 교육부총리 낙마를 보면서 교육계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따가운 시선을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피해가기 어렵게 되었다. 7차 일반교육과정으로 교육계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자 기존의 교사 중심의 관행적 학습에서 학생 중심의 수요자 중심의 변화로 나아가고 있으나, 모든 일에는 그 사회의 원칙에 맞게 병행되어야 한다. 인습으로 굳어진 관행은 개혁의 대상으로 변화시키고, 개혁은 항상 원칙에 맞지 않으면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