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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40년전 여름 방학

눈이 떠지지 않는다. 어머니 성화에 일어나긴 했지만 눈꺼풀이 무겁다. 한동안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다. 밤새 더위와 모기에 시달려 뒤척거리면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으니 눈이 쉽게 떠지지 않는다. 이른 아침인데도 열대야의 후끈한 더위와 끈적거리는 습기가 온 몸을 감싼다.

방문의 문종이를 떼어내고 붙인 모기장(방충망)이 어설프고, 사람냄새를 맡은 문밖에 붙어있던 모기들이 문을 여닫는 사이에 들어오곤 한다. 입으로 불어 살포하는 살충제를 뿌리기도 하지만 틈새 어디론가 들어오고 만다. 잠결에 쫓아 보지만 어쩔 수 없다. 아침이면 배가 터질 만큼 몸이 무거워진 모기들이 잘 날지도 못하고 벽에 붙어있다. 모기에 물린 가려운 상처를 긁적거리면서 눈을 비비면서 밖으로 나온다.

들녘 마을에 먼동이 트면서 아침놀이 발갛고 붉은 해가 꽤 빠른 속도로 지평선을 뚫고 머리를 내민다. 나뭇가지에서는 참새들이 짹짹거린다. 푸른 벼 잎자락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벼 잎 끝과 끝을 이은 거미줄에도 이슬방울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른 새벽부터 벼논을 둘러본 이웃집 아저씨의 바짓가랑이가 이슬에 젖어 축 늘어졌다.

참새 한 무리가 앞길을 막아설 듯 길바닥에 내려앉는다. 둘레둘레 찾아 손에 잡히는 조그만 돌멩이를 집어 방정맞게 뛰어 다니는 참새 무리를 향해 던진다. 놀란 참새들 후다닥 날아 저편 나무속에 몸을 숨긴다. 동네의 초등학생들 모두 모여서 맨손체조를 한다.

40여 년 전의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다. 마을마다 ‘소년단’인가 ‘애향단’인가를 조직했었다. 6학년 단장 학생의 인솔로 2열로 줄을 맞춰 등교하던 때다. 마을을 상징하는 깃발을 펄럭이며 단체로 등교했었다. 여름방학 때는 매일 이른 아침 일정한 장소에 모여 아침체조를 한다. 단장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어설픈 동작으로 체조를 한다. 동네 진입로 길가의 잡초를 뽑기도 하고 하수로를 막고 있는 오염물체를 제거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치우기도 한다. 출석부에 결석되지 않기 위해서 기를 쓰고 참석하고 억지 봉사활동을 한다. 공식적인 할 일을 마치면 일부는 집에 가고 남은 학생들끼리 아침 놀이를 한다. 무더운 날씨라서 아침이지만 금방 땀에 옷이 젖는다.

그때는 시골 마을마다 어린이들이 무척 많았다. 수십 명이나 되었다. 온종일 시끄럽게 노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멱감는 수로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풍덩거린다. 얼굴이고 몸이고 온통 구릿빛이다. 들녘에는 물놀이하기에 마땅한 깨끗한 시냇물이 없다. 농수로만 있다. 약간만 풍덩거려도 흙탕물이 되어버린다. 도저히 물 속에서 눈을 뜰 수 없다. 눈을 뜬다고 해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더위가 간다. 아니 추워지기까지 한다. 입술이 파래지고 햇빛이 필요해진다. 둑에 나와 몸을 말린다. 뜨거운 햇볕에 몸이 더워지면 다시 물에 뛰어든다.

여름방학 때면 으레 부과되는 특별한 과제가 있다. 퇴비 만들기다. 주변의 풀을 베어 두었다가 개학날 가져간다. 새끼줄로 꽁꽁 묶어 긴 줄에 매달아 질질 끌고 간다. 학급별로 지정 장소에 퇴비를 쌓는다. 다른 반과 경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다. 이기기 위해서 짚다발까지도 끌고 와서 쌓는다. 왜 방학 때마다 퇴비를 만들어 오는 과제를 냈을까. 실습지에 사용하기 위해선지, 퇴비의 필요성을 교육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선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또 단골 과제가 있다. 식물채집과 곤충채집이다. 요즘은 자연보호를 위해서 채집하라는 과제는 제시하지 않는다. 주변의 온갖 잡초를 뿌리째 뽑거나, 여러가지 나뭇잎을 따서 책갈피에 넣어 둔다. 잠자리 방아개비 등 여러 곤충들을 잡아 상자 속에 곤충핀으로 꽂아 둔다. 말리지도 않고 약품처리도 안했으니 곧 썩어버린다. 식물도감이나 곤충도감 같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책이 없으니 이름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그저 자연을 훼손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웬 곤충이 그리도 많았는지 모른다. 참으로 자연스런 자연이었다. 자연 속에서 노는 어린이들도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과 벗 삼아 놀던 어린 시절이 더욱 좋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이 측은하기 때문이다. 전자화면 및 전자음향에 찌들어 자연과 놀 기회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먼 미래의 인류는 머리만 커지고 운동능력을 상실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랄 때 몸도 마음도 강건해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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