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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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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대전백화점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80년대 중반에 민주화 운동이 한창인 때 힘있고 권력있는 사람과 대전백화점이 관련이 있다하여 화난 민중들이 난동을 부려서 백화점이 폐허가된 건물처럼 되었던 일이 있었다.

대전백화점이 다시 단장을 하여 재개업을 하여 한창 성업을 할 때이니까 꽤나 오래된 이야기이다. 아내와 나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대전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가기로 하였다. 대전백화점은 당시에 유행하는 옷을 전시도 많이 하고 판매도 하는 전문 의류 쇼핑점이었다. 사고 싶은 옷은 많이 있었지만 우리의 경제 수준에 맞지 않아 눈으로만 구경을 하고 지하 슈퍼에 가게 되었다.

그 당시에만 하여도 반짝 세일이 처음 시작할 즈음이기 때문에 안내방송에 멘트가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도 반짝세일에 싸고 싱싱한 물건을 사기 위해 지하 식품코너로 갔다. 삽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 자! 지금부터 반짝세일을 시작합니다. 수박을 판매가격에 20%씩 싸게 드립니다. 자 오천원짜리가 사천원씩 판매가 됩니다. 필요하신 분은 지금 말씀하세요. 지금 사시지 않으면 바로 오천원으로 돌아갑니다. 5분 동안만 세일행사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려고 모여 들었다. 우리도 고르기 위해 이것 저것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 선생님 아니세요? 저 00학교에 다니던 00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마이크에 울려서 들려오는 소리는 엄청나게 컸다. 그것도 나를 향해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갑자기 얼굴이 빨간 홍당무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졸지에 나에게로 쏠렸다. 나와 아내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내가 갑자기 준비되지 않은 그자리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선생님, 00학교에 근무 하셨지요?"
"어- 그래요, 근무하였었지~ 요."
"저 그 학교에 다니던 00 입니다."

자세히 보니 순진하고 착한 행동을 하던 녀석이었다. 모진 세월이 이토록 사람을 변하게 하였던가. 이제 당당하고 씩씩한 청년이 되어있었다.

순간 2학년 때 순진하고 착하던 녀석의 모습이 떠 올랐다. 1주일에 딱 한 번 다섯 시간까지 하는 날이 있어서 그날은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학교에 입학을 하여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점심을 먹는 시간이기에 아이들은 무척 재미있어 하고 기다림에 지쳐 연신 언제 점심을 먹느냐며 두어 시간만 끝나면 거푸 물어보게 된다. 그런데 이녀석은 두 시간을 마치고 배가 아프다며 울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서 아픈 것이었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학교에 왔다고 한다.

나는 얼른 아이들을 시켜서 우유와 빵을 사오게 하여 먹도록 하였다. 그러나 녀석은 먹지를 않는 것이다. 다시 불러서 왜 먹지 않느냐고 하였더니 누나와 함께 먹는다고 하였다. 누나 것은 내가 다시 사 줄테니까 먼저 먹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먹기를 시작하였다. 이제 2학년이면 생각없이 무조건 먹으려 할텐데 누나와 함께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뭉클하면서 궁금한 생각이 들어 자세히 물어 보았다.

녀석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뜻이 맞지 않아 아버지는 타지역 먼곳에서 식당일을 하시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머니 마저 어제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눈에는 커다란 눈물 방울이 얼굴을 타고 턱으로 흘러 내렸다. 더 이상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누나 것은 내가 사 줄테니까 걱정말고 먹으렴. 오늘 집으로 갈때는 나하고 같이 집으로 가자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녀석의 집은 보문산 아래 달동네로 도랑가에 있는 조그만 집에 새를 들어 살고 있었다. 살림살이도 보잘 것 없었지만 당장 먹을 쌀이 없었다. 나는 가까운 쌀집에 들려서 쌀 한 말과 라면을 몇개 사다놓고 조금만 기다리면 어머니가 돌아 올 것이라며 위로를 하고, 일단 아버지한테 전화를 하라고 타이른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학습 준비물과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하고 있는지 유의하며 살펴보았다.

그 후 10여 일이 지난 후, 쉬는 시간에 밖에 손님이 오셨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밖에 나가 보았더니 중년의 아주머니가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계셨다. 녀석의 어머니라고 한다. 그동안 선생님 덕분에 가족이 모두 모여 살게 되었다며 무척 고마워 하셨다. 가족이 함께 모여 살게 되었으니 내일 처럼 고맙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몇 번이나 당부하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 선생님은 오늘 공짜로 수박을 드립니다. 가지고 가세요"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 얼굴만 쳐다보게 되었다.

"선생님, 가지고 가시라니까요."
"...... ."

아내와 나는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주는 수박을 받아들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채 도망치듯 나왔다. 아마 그 자리에서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빨리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 내가 학교 선생님이라는 것이 여러 사람앞에 알려지는 것이 부끄러움으로 다가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는 제자를 부끄럽게 생각하였을지도 모른다.

먼 훗날 나는 두고두고 그자리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제자에게 떳떳하게 말 한마디 못하고 도망쳐온 내 자신이 지금까지 늘 부끄럽게 생각을 한다. 이런 때는 종종 법정 잠언짐에서 '내 자신이 부끄러울 때'를 읊조리며 마음을 다스려 본다.

<내 자신이 부끄러울 때>

내 자신이 몸시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 섰을 때는 결코 아니다.

나보다 훨씬 적게 가졌어도
그 단순함과 간소함 속에서
당당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이다.

그 때 내 자신이 몹시 초라하고 가난하게 되돌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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